어디서 얼핏 본 기억이 나지만
홍위병은 과잉 민주주의었다는 말이 있는데
가장 권위주의적인 요소로 보이는 마오이즘과 그 시절 중공이
사실은 그 무엇보다 대중주의 요소를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권위주의의 끝판왕으로 보이는 게 사실은 민주주의의 끝판왕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어디서 얼핏 본 기억이 나지만
홍위병은 과잉 민주주의었다는 말이 있는데
가장 권위주의적인 요소로 보이는 마오이즘과 그 시절 중공이
사실은 그 무엇보다 대중주의 요소를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권위주의의 끝판왕으로 보이는 게 사실은 민주주의의 끝판왕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 <<< 병신체제인데 대안이 없음
요즘보는 팬덤정치에 가깝지.. 홍위병들 소홍서들고 같은 편에게도 린치가하는..
공감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133685#0DKW
- dc App
혹시 네가 어디서 얼핏 봤다는 거 이 기사 아냐? - dc App
기사는 아니었다.
그렇군.
결국 마오나 댓글 링크에 있는 히틀러나 민중이 광기에 가깝게 지지해서 독재자가 된 걸 보면 민주주의의 위험성이 드러나는 부분
민주주의가 그 자체로 위험하다기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의식 수준이 낮은 인민에 의해 운영되는 민주주의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원글 작성자와 네가 말한 히틀러의 집권이 그 예시고... 근데 중국 문혁의 예시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의견 교환 괜찮을까? - dc App
당연하지. 사실 마오의 집권은 군벌이 그 시초인 걸로 아는데, 그럼 왜 마오를 지지하는 세력이 나타났는가, 단순히 공산주의자의 증가 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있음.
또한 민주주의의 경우도 님 말대로 미숙한 인민들이 선동 등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때 그 허점이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함. 인민이 지혜롭고 정치가가 정의로울 때 민주주의는 빛을 발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장밋빛이 아니겠지.
수락해줘서 정말 고마워. 우선, 이 의견 교환의 목적은 절대로 네가 내 주장에 동조하도록 너를 굴복시키는 데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서로의 견해를 교환한다는데 있는 점을 염두에 두어줘. 기분 나쁘면 즉시 말해주고, 허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반박해주시길. (다른 사람도 참여 가능. 단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말을 건네는 사람을 명시할 것) 네 말대로야. 모택동의 집권의 배경에는 분명히 중화민국 시기 군벌의 난립(공산당도 홍군이라는 군대에 기반한 군벌이라고도 할 수 있지), 거기에 더하자면 일본군의 침략 등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혼란이 있었지. 바로 여기가 중요한 지점인데, 중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착을 할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했고.
다만 중국 공산당 역시 처음부터 모택동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고, 공산당 내부에서 권력 기반을 다지고 대장정과 서안 사변을 거친 뒤 2차 국공합작을 이뤄낸 뒤 중화민국군이 일본군과 열심히 싸울 동안 항일 활동보다 뒤에서 세력 확장을 하는데 더 힘을 두었지. 그래서 일본이 항복한 이후, 그 확장한 세력을 가지고서 (일본군과의 전쟁에서 막심한 피해를 입은) 중화민국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대륙을 장악했고 말이야.
왜 공산당과 모택동을 지지하는 세력이 나타났는가, 라... 로씨야 10월 혁명 이후로 유입된 공산주의 사상은 당시 중국의 지식인에게는 매우 매력적이었어. 그 당시 중국은 반봉건(지역의 왕인 군벌의 난립)-반식민(제국주의 세력의 침투) 상태였는데, 북벌을 이루고 세워진 국민당 장개석 정부가 그런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 의문이 컸던 것이었지. 아무리 정식 헌법 제정 이전의 과도기라고 해도, 장개석도 언론을 탄압하고 자기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했던 독재자였음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참고로 중화민국 헌법 제정은 원래 1937년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7.7 사변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전후 1946년에야 제정)
하긴 장제스도 결국 오당, 당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온갖 탄압을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반대 진영인 공산당에 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듦. 심지어 이 오당은 현 중화민국 국가에도 있는 가사인데, 오당이 조국이 아닌 독재를 저지른 장제스의 국민당을 뜻한다고 부르지 않는 사람이 지금도 있을 정도니…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서 봉건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항한다는 기치를 내건 공산주의는 매우 매력적인 이념이었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지식인도 많이 나타났지. 사상적으로 중국 공산당을 뒷받침해주었다 이거야. 다만, 스탈린주의, 개인을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사상 역시 받아들였고. 아무튼 사상적 지지와 중일전쟁 기간 중 세력 확장, 특히 선전 활동에 힘쓴 공산당은 2차 국공내전 때 그 효과를 보지. 자,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일반 중국 인민은 과연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별로 없었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가 잡히지도 않고, 잡혀 있다고 해도 그런 정치 참여를 위해서 뒷받침되어야할
교육 기반과 언론의 자유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야. '의식 수준'이 낮았던 거지...
그런데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 이 혼란을 종식하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를 열어보겠다! 이러고 또 군사적으로도 우위를 점하니까 "아, 중국 공산당이 옳구나!" 싶은 거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지지에서 중국 공산당의 '해방'을 지지한 게 아니라.
결국 난세의 영웅처럼 나타난 마오를 우상숭배 한 거네..
그럼. 최종적으로 문혁은 대약진 운동 같은 마오의 이전 실책을 마오의 탓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청년들이 그 실책을 역사와 부르주아의 탓이라며 분노를 표출했고, 이에 마오가 부채질 한 거라고 봐도 되는 거임?
모택동은 연안 시절에 이미 정풍 운동으로 반대파를 숙청하고 당내 지위를 공고히 했어. 이제는 대륙을 차지했으니, 그런 자기에게 반대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들을 싸그리 없애버리고 황제처럼 군림하고자 한 거야. 사실 1946년 중화민국 헌법 제정 이후로는 (어디까지나 이론상일 뿐이지만) 협상을 통해 국민당을 향한 적대 행위와 내전을 멈추고 민주주의 국가의 한 정당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어. 하지만 모택동은 자기가 전 중국의 유일한 영도자가 되어야한다는 야심을 품고 그러지 않았고 말이야. (물론 여기에는 국민당 책임도 있지. 공산당을 굴복시키는 모양새를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양보했더라면...)
그럼 여기서 또 질문거리가 생기는데, 이후 80년대에는 천안문 항쟁 같은 대규모 민주 시위가 일어났잖음. 그럼 이 마오의 실책을 온 몸으로 경험한 세대가 문혁 이후 대학에 가고, 자의가 생기면서 마오를 비판하고, 그게 또 등소평 시대 비판으로 이어진 거임?
바로 그렇지! 반우 운동, 우파에 반대한다는 운동이 적절한 예시. 백화제방 백가쟁명이라는 명목으로 지식인들이 우선 자기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게 한 다음, 그들을 싸그리 우파로 몰아 숙청해버린 거지. 그리고 이후 대약진 운동의 처참한 실패로 실각하여 유소기 파벌에게 권력을 내주고 나서, 그 권력을 다시 되찾도록 청년들을 선동한 것이 바로 문화대혁명인 것이고.
인간의 욕망이 모든 사상의 걸림돌이 되는 것 같음. 공산주의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욕망은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용납할 수 없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공산주의자라는 마오조차도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서 나라를 천문학적으로 씹창낸 걸 보면..
그렇지. 문화대혁명 시대에는 언론의 자유가 전혀 없었어. 누구도 건전한 사회 비판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말이야. 1989년 민중 운동은 1976년 모택동 사후 사인방이 숙청되고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등소평이 집권하며 이뤄낸 개혁개방의 결과 중 하나였어. 어느 정도는 열어뒀단 말이지. 비판의 여지도 어느 정도 보장해줬고. 그러다보니 사상에 변화가 생기고 ("모 주석만이 옳고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도 없다!"였던 상황에서 벗어났으니 새로운 사상과 비판 의식이 싹트는 것이 당연하지. 그런데 그 비판 의식이 자칫하면 중국 공산당에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등소평 정부는 정신을 오염하는 부르주아 사상 척결을 명분으로 사상 탄압을 가했지만... 그럼에도 그 의식은 강해졌고, 그 정점이 네가 예시로 든 천안문 항쟁.
인간의 욕망이 모든 사상의 걸림돌이 되는 것 같음. -> 천만번 맞는 말. 이사야의 말마따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비판을 허용한 등소평이 결국 탄압을 저질렀다는게 아이러니하네. 또한 등소평의 탄압이 현 중국의 사상을 완벽하게 부재시켰다는 것도 안타까움. 민주 사상은 탄압되었고 자랑하던 공산주의는 사실상 자본주의화 되었으니…
아무튼 중국의 이런 역사적 환경 때문에 중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었다는 거야 내 말은. 민주주의가 실현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과잉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이야. 적어도 도이췰란트는 11월 혁명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은 비록 국민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헌법은 굉장히 선진적이었지. (중화민국 헌법도 매우 혁신적인 헌법이었고) 또 민주주의를 어떻게든 운영하려고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2제국 치하 '신민'이었던 인민의 의식 수준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이식되었기에 히틀러라는 괴물이 탄생한 것이라 경우가 다르다 이거지 내 말은.
결국 마오 숭배는 과잉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봉건적 전제군주제의 영향인 건가
비판을 해도 공산당의 입지를 흔들지 말 것. 이게 대전제였으니 말이지. 중국 공산당이 없으면 등소평 자신도 존재할 수 없어. 그래서 모택동에 대해 "공7과3"이라고 땡처리 해버린 거고. 민주주의? 처음부터 읎었어요. 공산주의? 노동자를 위한 나라에서 파업은 불법이라 파업하면 공안들이 체포해감. 농민? 농민공이 왜 있을까? 네 말대로야.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거야.
내 말이 그거야. 좀 더 정확하게는 봉건적 전제군주제에다가 스탈린주의를 합성한 것이지.
소련이 독재끼가 있었어도 어찌어찌 권력 견제가 가능했던 것과 달리, 중국에서 지금까지도 마오는 숭배의 대상처럼 여겨지는 걸 보면 봉건적 전제군주제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듯.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미친 듯이 격하했던 것처럼 등소평도 마오를 격하하려했지만 결국 제한이 있었던 것 역시 그 때문이라고 봄.
스탈린 사후 1인 독재의 무서움을 안 소련 공산당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해서 어떻게든 권력 견제를 가능하게 했지. 사실 그건 등소평 집권 이후도 마찬가지야. 다만 차이점이라면 최고 지도자가 군권을 먼저 장악한다는 것.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 주석이라서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어서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가 되는 형태로. 모택동 말마따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그 체제를 정립한 것이 등소평이었고 말이야. 아무튼 네 말이 맞아. 이런 말이 있어. "중국을 이해하려면 우선 '황제'라는 말부터 파악하라. 중국은 황제(공산당, 그리고 이십대 이후로는 완전히 습근평)의 나라다." 등소평도 마냥 모택동 격하를 못 했지. 사적인 이유로나 공적인 이유로나 말이야. 모택동을 격하하면
중국공산당이 유일 정당으로 집권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체제는 부당하다는 결론으로 귀착될 수 있는, 공산당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니. 그래서 "잘못도 많지만 공은 더 큼. 공7과3. 이걸로 끝. 토 달지 마."라고 한 거고.
이게 은근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적 영향 같음. 한국에서도 대통령은 흔히 왕에 비유되고, 중국 주석은 황제고(비유 아니고 진짜로), 일본 총리는 쇼군에 비유되는 식. 이런 면에서 러시아는 중국 쪽을 따라가면서 소련보다 못한 국가가 되는 것 같기도 함. 푸틴=차르가 되어버렸으니…
"가장 권위주의적인 요소로 보이는 마오이즘과 그 시절 중공이 사실은 그 무엇보다 대중주의 요소를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원글 작성자가 쓰셨는데, 나는 이것은 완전히 동의해. 극과 극은 통해.
다만 민주주의가 곧 대중주의는 아니고, 건전한 민주주의는 대중주의를 경계해야한다... 뭐 그게 내 생각이야. 원론적이다만...
나도 그렇게 생각함. 극한의 권위를 만드는 것은 극한의 지지, 극한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은 극한의 권위가 자행하는 선동…
결국 사람 하나하나가 지혜롭게 그 선동을 파헤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듯
결국 사람 하나하나가 지혜롭게 그 선동을 파헤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듯 : 내가 할 말을 네가 했네. 맞아. 이것이 바로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책임이자 의무야.
그 첫 시작은 비판적 독서고....
댓글들 너무 많아.. 사탕이 무서웡.. - dc App
직접민주주의와 독재의 거리는 매우 가까우며 이는 드골도 ㅇㅈ할 사실
마오주의는 권위주의가 아니라 극단적 대중주의임 이념 자체부터
그렇기 때문에 스탈린의 전체주의적 통치에 실망한 서구권이나 3세계가 마오주의에 열광했던거고, 소련과 중국이 60년대에 이념차로 갈라선거지
마오쩌뚱은 그 시절 신이었지. 마오사상은 운동 혁명 투쟁을 강조하는 이론임 마오쩌둥이라는 신적인 권력자가 "부르주나지는 당내에 있다.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를 타도하자" 이렇게 선동함으로써 시작됨. 마오쩌둥의 지도가 없이는 불가능한 혁명임. 마오쩌둥에 대한 종교적 숭배와 종교적 열정이 결합해서 일어난 일임 민주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함
마오가 원래 아나키즘서 시작했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