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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가 액자 밖 이야기를 주도하는 관찰자 시점이면서, 인터뷰 대상자인 작가(이하 작가)의 글들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액자 형식이기도 한, 구성적으로는 복잡한 글입니다.

왜 '생의 이면' 이라는, 막연하면서도 신비한 제목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덕분에 왜 '생의 이면' 일까. 하는 의문이 작품을 읽는 도중에 떠올랐고,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처음 '생의 이면' 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는 죽음에 대한 책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생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중심으로 쓰여진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액자 속 작중에서 죽는 인물이 나오고, 그 죽음이 주인공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뿐인 듯 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에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고찰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생의 이면' 이었을까요. 왜 삶의 다른 낯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요?

머리가 아파 쉽게 생각해봤더니, 소설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이 유년기로부터의 필사적 탈주였다고 말합니다. 탈주라 함은 영원한 도피고 외면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에서는 유년기의 흔적이 끊임없이 발견됩니다. 아니, 유년기 그 자체입니다.
글쓰기를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이 점이 그렇습니다.

또, 액자 속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할 듯 한데, 굳이 인터뷰어를 내세운 것이 그렇습니다. 인터뷰어는 작품을 작가 중심(표현론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인터뷰를 목적으로 작가를 방문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자전적입니다. 취사선택한 사실을 왜곡한 것이 작품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파편적인 작가의 음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생의 이면이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 안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작가는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길 뿐인 사람이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도저히 제대로 된 독후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이만 줄입니다. 전에 도갤에서 추천받은 작품 위주로 보고 있는데 하나같이 어렵네요;; 수준에 맞는 작품을 찾아 읽는게 3일1독과 건강에도 이로운 것 같습니다.
생의 이면은 그래도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문체가 감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 어두침침한 주인공도 맘에 들었습니다. 소장한 후에, 지적 수준이 올라가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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