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의 말대로 연극 파트에 있는 말인데 괴테도 시리우스의 입장에서 매우 짧은 시간일 것인 만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는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이고 그의 작품은 후대의 고고학자에 의해서 그저 우리 시대의 증거물들로 이용되고 찾아질 것들에 불과할 것이라 함
그렇다면 우리는 왜 노력을 해야하지?
당장 서울역에 가서 디1비누워 자거나 집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나라에서 주는 돈만 받아먹고 사는 것과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고 학문적으로 업적을 세우는 삶이 결국엔 아무런 차이도 없다면 왜 노력을 해야하지?
전체적으로 대충 간추리자면 현실을 직시하고 속지말라는 내용으로 나는 이해했는데
기독교적인 하느님나라나 영원한 삶이라는 게 증거가 없는데 왜 믿냐는 말이지
근데 어떤 분야를 개척해나가고 아예 없던 분야를 만들어나가는 그런 삶은 기본적으로 그런 망상과도 같은 믿음과 함께 시작이 이뤄졌다 할 수 있지 않나?
까뮈라는 사람도 마냥 재밌어서 책을 읽었고 공부하다보니 시지프 신화라는 책까지 쓰게 될 정도로 발전한 것이 아닐 것이잖음
그런 행동과 현재가 쌓여서 어떤 미래가 생겨날 것이라고 그렸을 것이 아닌가?
근데 그런 미래가 약속된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만약 그런 미래를 그리지 않는 것이 부조리함을 직시하는 것이고
시리우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이 그런 부조리함의 근거라면
왜 서울역에 가서 디1비 자지 않고 나는 시지프신화를 읽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어떻게 살지는 니 자유란거임 디1비자든 금메달을 따려고해보든
카뮈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는 척 하는 것을 거부함, 그런 과정에서 어떤 것이 진실로 얼마나 가치있는지 알 수 없게 됨,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이 가치 없다는 허무주의는 아님, 카뮈는 모든 것은 가치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둔 상태임, 여기서 하나의 철학이 생겨나는데 그게 바로 삶의 양적 가치라는 것임
어떤 것이 가치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죽지 않을 것이라면(카뮈는 자살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이라고 보았음) 모든 것의 가치를 미측정 상태로 두고 최대한 많은 아카이브를 쌓아두는 것, 최대한 많은 것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삶의 가치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생각한 것임
이런 식으로 카뮈 철학의 중심에는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지프스적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게 되는 것임, 그런데 이건 어느정도 철학이 그러하단 것이고 좀 더 똑바로 이해하려면 역사적인 맥락을 살펴보는 게 좋음
카뮈는 전쟁에 참전하면서 자신은 똑바로 알지도 못하는 거대한 힘들에 의해서 타인들과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가는 사람들.. 또 어떤 비약적인 논리 속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목도하고 이런 철학을 생각해낸 거거든
20세기 이전까지는 '물리적으로' 먹고 사는 것도 정말로 힘들었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먹을 것을 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생을 보냈음. 20세기 초의 질소비료 양산과 20세기 중반 이후 농기계 개발 보급을 통한 농업 혁명 이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농업 생산량 자체가 상당히 적었고 그래서 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식량'을 물리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어려웠음. [시지프의 신화]에서 돌덩이를 다시 굴리는 행위의 본질은,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전세계 대부분의 민중의 삶 그 자체를 투영한 것임. 행복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가혹한 노동을 감내하고 인생 전체를 고통스럽게 보내는 것이 대부분 인간들의 삶이었고... 그것을 테마로 한 에세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