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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공상임은 정통적인 유학자로서 살아왔다. 강희제 때 그는 황제의 교사로서 발탁되는 영예를 누렸고, 이후에는 지방에서 수리 사업을 관할하였다.
그렇게 내려간 남중국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는 직접 보고 느낀 지방의 여러 사회적 모순들을 비판하는 시집을 내기도 하였고, 또 이전에 초고를 완성하였던 희곡 <도화선>을 다시 손보았다. 도화선이 재자가인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역사적 증언을 담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여기서 역사적 증언이란, 공상임 본인이 직접 취재한 남명 유민들의 패망기 명나라에 대한 기억들을 말한다. 도화선은 이들의 울분을 계속 전승하기 위해서, 또 당대의 명사들과 악인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창작되었다. 공자의 직계 후손으로서 공상임은 근세 중국의 방식으로 새로운 <춘추>를 썼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만큼 역사적 리얼리티는 도화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도화선의 리얼함, 혹은 진실됨이란 무엇인가?
도화선의 서막은 기가 막히게도 "도화선이라는 연극을 막 즐겁게 보고 나온 어느 찬례(사당의 제례관리자)의 이야기"이다. 찬례는 희곡과 희곡을 쓴 공상임을 실컷 칭찬하고서는, 기쁘게도 자신 역시 이 희곡에서 역할을 하나 맡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건 바로 본인, 찬례 역이다. 극의 내용을 간략히 노래하다 그는 "아직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주인공 후방역이 온다"면서 퇴장한다.
이 서막이 노골적인 메타성을 띠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흥미로운 건 메타적인 것과 비메타적인 것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찬례는 도화선을 관람하는, 작품 밖의 존재인 동시에 작품에서 분명 한 역을 일임하여 출연하는 작품 안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양자 모두를 인식하며 작품의 안과 바깥 세계 모두를 넘나든다.
극의 중반부 막간에 찬례는 또다시 작품 밖 존재로서 등장한다. 여기서 그는 "오늘도 도화선을 보러 가시느냐"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다(도화선은 장편이라 며칠에 걸쳐서 공연했다). 그리고 그는 사실 도화선의 비극적인 내용(홍광제의 무능함, 완대성 사마영 같은 간신들의 억압, 비극으로 끝난 사랑 등)들을 이미 알고 있다는 뉘앙스의 노래를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이 모든 일들을 "다시"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패망을 "다시" 본다고 찬례는 말한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아마도 이것은 찬례가 대다수의 예상 관객들처럼 남명의 기억을 가진 유민으로서 이 극을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극 바깥의 찬례는 극 중의 찬례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극 중 등장하는 찬례는 서막의 찬례처럼 남명의 패망을 경험하고 청나라 땨까지 살아남는다.
여기서 공상임이 막마다 연도와 장소 표시를 철저히 해놓은 게 흥미로워진다. 극 바깥의 찬례가 등장하는 두 부분은 같은 강희제 시기 북경 태평원극장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 외의 부분은 숭정제 승하 직전부터 남명의 홍광제까지 시간 순서대로 연도가 표시된다.
그렇다면 이런 타임라인을 상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찬례는 도화선의 본격적 내용을 겪는다-> 이후 청나라 때까지 살아남아, 도화선이라는 이름의 희곡을 본다-> 이후 그는 그 극에서 본인 "찬례" 역을 부여받아 도화선을 연기한다.-> 찬례는 도화선의 본격적 내용을 겪는다.
요컨대, 찬례가 연기하는 남명 패망의 재현과 찬례의 남명 패망 재현의 관람 이 두 사건이 같은 시계열에 들어가면서, 재현과 원본이 끊임없이 서로를 빚어내는 순환적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순환적 구조는 작중의 악역인 완대성에게서도 발견된다. 초반부에 완대성은 과거에는 악행을 저질렀어도 이미 권력에서 밀려난 입장이라, 자기를 변호하기도 하고 선비들 사이에서 명예를 회복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오히려 커다란 모욕을 당하게 되고,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는데, 새로운 권력이 활개를 치려는 시점에서 갑자기 등장해, 대략 이런 등장시를 읊는다.
"흑과 백의 싸움을 바둑 두듯 여기고/가짜 수염 달고 극 중 인물을 연기하네"
이건 완대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메타픽션적 발언을 하는 부분이다. 이후 이야기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는데, 이전까지는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재자가인형 사랑 이야기에 치중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완대성이 당대 권력층에게 붙어 주인공을 파멸시키고자 몰두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그것이 연극이고 재현임이 노골적으로 인지된 바로 그 순간, 연극은 재자가인 이야기로 대표되는 환상성을 벗어나 비극적 역사를 드러낸 셈이다.
이렇게 해서 도화선은 두 가지 효과를 지닌다. 첫째, 남명은 영원히 몰락한다. 희곡의 재현과 실제 역사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아, 희곡이 곧 남명 패망사의 육화가 된다. 당신이 도화선을 읽는 바로 그 순간 남명은 몰락하고 있다.
둘째, 이러한 구조 속 리얼함은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다. "실제 역사"에서 주관적 가치를 개입시켜 만들었을 역사에 대한 "재현"이, 바로 그 "실제 역사"로 나타나 다시 재현을 불러일으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도화선의 진실됨은 따라서, 단지 오성으로 명료히 파악되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것은 민중의 증언에서 생생히 담겨 있던 모든 것, 즉 사실뿐 아니라 그에 대한 분노, 비애, 그리고 바램과 신화까지, 그 모든 것을 담아낸다는 의미에서의 리얼함이었던 것이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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