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이 소설은 공간은 베이징과 바러우산맥의 두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베이징에서 양커는 매우 초라한 모습이다. 그의 강좌는 학생들에게 외면받으며,  뜻밖의 일로 많은 학생들이 강좌를 수강했을 때에도 강의가 끝나기도 전에 모두 나가버린다. 부총장 리광즈와 아내 자오루핑이 불륜을 벌이는데도 싫은 소리를 하지도 못하고 굽실거린다. 베이징에 있는 정신병원에 수감됐을 때에도 그는 원장에게 무릎을 끓고 애원한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그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러우산맥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그는 유일한 대학 교수로서 존경을 받는다. 부모들은 아이를 데려와 양커가 머리를 쓰다듬어 대학에 합격하게 되기를 바란다. 스스로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되자 베이징에서의 비굴하고 겁많은 모습과는 또 다른 추한 일면이 드러나게 된다. 유흥가에서 자신의 교수 신분을 자랑하며, 여인들에게 돈을 주며 고향으로 돌아가 건전한 일에 힘쓰라며 군자연한다. 이외에도 여러 기괴한 행동을 하며 가식적이고 비겁한 행동을 보인다. 양커는 바러우산맥 고향에서 공자가 채록하지 않은 <시경>의 나머지 편들을 발견하고 베이징으로 돌아가 리광즈에게 자신의 연구를 지원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다시 바러우산맥으로 돌아간다. 유흥가를 습격한 공안에게서 아가씨들을 구해 <시경>의 나머지 편을 발견한 고성(古城)으로 데려가 살게 되는데, 억울하게 쫒겨난 다른 교수들이 그 곳을 찾아와 함께 원시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결말에서 양커는 <시경>의 또 다른 편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여정을 떠난다.

 

 이 작품의 제목은 원래 귀향(回家)이었는데 이후에 <풍아송>으로 바뀌었다. 결말 또한 작가가 처음 구상한 것과는 다르다. 초고에서 양커는 새로운 시를 찾아 길을 떠나지 않는다. 원시적인 공동체인 시경의 고성이야말로 그가 돌아간 고향이다. 초고에서는 새해가 되어 수십 명의 교수들과 아가씨들이 삼일 동안의 운우를 마친 후에 일출 묘사가 이어진다. 이 일출로 '온 세상이 월경의 피처럼 붉게 되었'고 남녀 모두 '이 쓸쓸한 아름다움과 따뜻함에 깜짝 놀랐다.' 겨울이 끝나고 햇빛에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 마지막 두 구절은 이렇다: '온 세상이 붉게 되었다. 온 세상에 향기롭게 되었다.' 이 장관이야말로 양커가 찾은 고향이자 낙원이다. 그러나 출판사가 이 결말을 고치지 않으면 출판할 수 없다고 하여 양커가 새로운 시를 찾으러 떠나는 것으로 고쳤다고 한다. 고친 후의 모습은 양커가 학자의 자존심을 약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경 고성에서의 공동체는 쫒겨난 학자들과 매춘부들이 함께하는 낙원이다.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먹을 것 걱정이 없으며, 애욕을 마음껏 발산한다. 예기에 '먹고 마시고 생식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고성은 이러한 조건이 모두 만족되며,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레닌의 키스>에서 서우훠 마을의 지난 수백년 동안의 모습이나 <변성>에서 사공 할아버지와 손녀가 사는 마을과 같다. 소국과민한 공동체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현실도피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품 속에서 중국의 전통을 상징하는 시경이 학생들에게 외면받는 것, 대학에서의 부당한 권력에 쫒겨나는 교수들과 권력에 빌붙는 학자들, 이러한 것이야말로 중국 지식인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학을 떠나 도착한 고성에서의 낙원은 꿈같은 일에 불과하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고,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본다"...이런 정취는 아름답긴 하지만 지식인이 가질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이것으로 남은 건 <나와 아버지> 단 하나! 올해 안에 옌롄커 정ㅋ벅하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