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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중 '나를 보내지 마'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이 제목은 주디 브릿지워터의 'Never Let Me Go' 라는 노래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작중에서도 제법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작중에서 이 노래가 등장하는 장면은 무척 짧은 편이고,

작품의 전체적인 얼개 부분을 꿰뚫느냐 하면은 그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노래에는 작품을 꿰뚫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등장인물의 삶, 그러니까 주인공 캐시와

어린 시절 캐시가 있던 헤일셤 아이들의 모든 세계를 꿰뚫는 것이다.


어릴 때 들었던 노래가 일명 '인생 곡'이 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특히 어린 시절 이런저런 노래의 화자들에게 스스로를 대치하며

'나'를 발견하는 과정을 자주 겪는다.


주인공 캐시 역시 이 노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런저런 공상을 통해 자신이 생각한 의미로 노래를 덧칠한다.


「그 노래의 어떤 점이 왜 그렇게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일까? 가사의 의미를 새기는 대신 나는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 미고..." 라는 후렴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에 걸쳐 간절하게 아기를 바랐으나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그 여자는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면서 "베이비, 네버 렛 미 고..." 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녀는 한편으로 몹시 행복한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아기가 병에 걸리거나 누군가 아기를 빼앗아 가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있다......」


캐시가 생각한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여기에서 캐시의 공상은 사실, 직접적으로나 은유적으로나 캐시 자신과 등치된다.


'나를 보내지 마'의 전체적인 톤은 '흘러간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소설의 시점은 캐시가 현재에 이르기까지에 과정을 어린 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캐시에게 차근차근, 아주 천천히, 빛바랜 헤일셤 시절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이렇듯 초반부 헤일셤의 비중이 굉장히 짙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벼룩시장, 음반, 화랑... 마치 그 시절'남겨진 것들'과도 같은..

작품 중후반부에 캐시와 토미는 이 '남겨진 것' 중 하나인 토미의 그림을 보기 위해 헤일셤 시절 '마담'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캐시와 토미는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다시금 확인할 뿐이다.


'Never Let Me Go'는 현실에서도 흘러간 노래가 되었고,

이 소설을 읽으며 이것을 슬프게 받아들이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가 캐시와 헤일셤의 삶들에 은유되는 순간, 이 노래는 '흘러가서 슬픈 노래'가 되어버린다.


평생 온전한 삶을 가질 수 없었던 헤일셤의 아이들에게 이 짧은 유년이 유일한 추억의 잔흔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아이들은 그 시절이 흘러가버린 것이 될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시절이 흘러가는 순간 자신의 삶도 떠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시절은 떠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들의 삶도 떠난다.


헤일셤의 '마담'은 천진난만하게 노래하는 캐시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마담은 그곳에서 '나를 보내지 마'라는 문구에 대치되는 캐시의 삶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캐시가 아주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보내지 마'라는 문구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도..


마지막 부분에서 캐시는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 어린 시절 흘러간(토미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자신이 그리던 모습 그대로 어딘가에 모여있을 거라고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상상은 진전되지 못한다. 캐시는 흘러간 것들을 흘러간 채로,

마지막으로 자신이 흘러갈 곳을 향해 되돌아간다.


'나를 보내지 마'라고 노래하는 캐시는 모든 것을 보내주는 역할이 되어버린다.

캐시의 슬픔은 단순히 스스로의 짧은 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여긴 모든 것,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의 마음에만 남았음에서 오는 슬픔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를 보내지 마'라는 노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헤일셤에 대한 노래이고,

나아가 흘러간 모든 삶에 대한 노래가 된다.


소설의 결말을 보았을 때,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헤일셤의 아이들과 우리의 삶은

그 길이만 다를 뿐, 사실은 같은 게 아닐까


우리도 언젠가 노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대여, 나를 보내지 마.. 보내지 마..

이런 빛바랜 가사를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