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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감상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어쨌든, 이런 고전 소설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된 일이다.
물론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과로로 죽은 창작자들, 뭐 그런 거지.
그들에 비해선 감상하는 사람이 훨씬 안락할 것이다.
창작과 감상은 분명 둘 중 하나라도 없어지면 둘 다 의미를 잃게 되겠지만 그 둘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 이유는 아마 창작한 걸 보고 난 뒤 감상이 불러 일으켜지기에 인과관계 때문에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타닥타닥
이제 나는 감상문을 다 적었다.
이번 것은 실패작이고, 실패작일 수밖에 없었다.
그 감상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빌리 필그림은 그저 바라봤다.
그 감상문은 이렇게 끝난다.
지지배배뱃?
1. 빌리 필그림과 깨진 공식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그저 바라봤다.
이 작품의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그의 비범한 고간을 빼면 그 평범하면서 친숙한 이름, 그의 가정,
누가 얘기하는 것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서술 방식 모두
주인공에 집중하기보다 주위 환경에 집중하게 만든다.
반전이 주제인 이 소설에서 그는 그저 바라보고 순응한다.
롤런드 위어리와 그가 속한 삼총사에 끌려다닐 때도,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서 끌려다니다가 수용소에 갇힐 때도.
제5 도살장이란 주소를 받고 폭격에서 살아남아 달 표면을 누빌 때도 말이다.
이렇듯 그는 특히 전쟁에 대해서는 개입을 전혀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며,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한다.
그의 무기력함은, 전쟁이란 허무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롤런드 위어리가 잡혀 눈물로 범벅이 되어도,
그는 태평하게 위아래로 흔들며 움직였다.
마치 다 부질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여기서 마무리 지은 다음, 지지배배뱃?
이러면서 달아나도 괜찮겠지만
아직 해야만 할 얘기가 남았다.
바로 “이 소설이 반전 소설인가?”에 대한 물음을 짓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그러니까 작가인 커트 보니것(1장의 화자와 동일 인물인 것 같다)과
빌 필그림은 분명 어느 정도 삶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1장에서
“나는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학살에는 참여하지 말라고, 적의 대학살 소식을 듣고 만족하거나 기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도.
빌리 필그림은 아들의 베트남 전쟁에서의 학살에 대해선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빌리 필그림은 생각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소설의 주인공과 동일 인물이라는 등호를 왜 부쉈을까?
당시 주요 화두였던 베트남 전쟁은 왜 이런 식으로 나왔을까?
이 소설은 반전 소설이 아닌가?
2. sf, 판타지 없는 제 5 도살장
난 이 소설의 sf, 판타지적 요소를 실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곰곰이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빌리는 전쟁의 아픔에서 무기력해진 상태로,
수없이 죽어 나간 사람들의 시체 위에서,
홀로 서 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가 위어리에게 끌려 다니던,
살기 싫어하던 와중 그가 시간에서 풀려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시간이란 너무나도 잔혹해, 그것에서 탈피했다는 것이다.
또한 딸의 결혼식 날, 그가 트랄팔마도어인들에게 납치당했다는 것도
그가 딸이 결혼한 후 외로움을 느끼는 장면으로 보아
딸이 결혼하지 않은 이전의 순간들이
계속 존재하길 바랬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영화배우와(이름 기억안남) 트랄팔마도어에서 같이 잔 것도
현실의 그의 아내인 발렌시아가(이건 한국어로 읽으니까 뭔가 의도된 것 같기도 하네)
그가 생각하기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청혼할 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보아.
그런 무의식적인 사념들이 모여서 만든 상황인 것이 아닐까 싶다.
그토록 행복했기에,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랬으며.
그 바람이 트랄팔마도어인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그 순간이 영원하다고 믿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단지 이 두 가지 만으론
그가 아들에게 화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뭐 그런 거지”라는 건 트랄팔마도어인의 생각으로는
그는 이 순간에서 아픔을 겪으나 어느 다른 순간에선 행복할 거라는 것이다.
이 말은 전쟁광이 되란 소리가 아니며, 그저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절대로 막 죽이고서, “뭐 그런 거지”하는 사이코패스가 되라는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 의문이 남지만, 저자는 아직 숨겨둔 게 남아있다.
바로 에드거 더비의 처형이다.
3. 전쟁의 부조리함과 아이러니
1장에서 화자는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무조건 에드거 더비의 처형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단지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총살대에게 처형당한다.
가엾은 에드거 더비, 가장 죽지 않고 살아남았어야 할 그가
빌리에게 있어선 매우 사소한 이유로, 쓸모없던 빌리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는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가 그가 전쟁이 끝난 후 정신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전쟁은 아이러니한 것이며,
살아남아야 할 사람이 허무하게 죽어가고,
죽어 마땅할 사람이 살아서 돌아온다.
빌리 필그림이 아들의 모습에 무감각한 건, 이 아이러니 때문인 것 같다.
아들이든 아들과 싸우는 사람이든, 언제나 죽을 수 있다.
설령 그것이 비합리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는 더 이상 말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그에 순종한 것이다.
정말 전쟁이란 사람을 180도 바꿔놓는게 아닌가 싶다.
반전이란 사회적 흐름이 이전에 비해서 훨씬 대두되었단 점도,
고무적인 성과라고 생각한다.
난 사람들이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게임을 하는 걸 볼 때마다, 물론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알지만.
저런 식으로 전쟁에 대해서 생각할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아이러니만이 가득한 전쟁을 게임으로 가져와서
합리적인 hp, 소생 등의 요소로 전쟁과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린 평화 속에서만 살 수 없다.
트랄팔마도어인들도 막지 못한 전쟁을
우리가 어떻게 일어나지 못하게 하겠는가.
그저 우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 밖에 할게 없다.
그러면서 무기력하고 허무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뭐 그런거지,
전쟁을 그만 하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다.
우린 새가 아니고 사람이다.
4. 마무리
감상문을 쓰다 보니
전쟁에 대한 씁쓸한 기분만이 감도는 것 같다.
드레스덴 공습은 드레스덴을 하나의 달로 만들었고
새들은 그에 대해서 “지지배배뱃?”하고 말한다는 작가의 말은 틀렸다.
새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어리둥절한 생존자들이 그저 울부짖을 뿐이다.
지지배배뱃?
(이 감상문은 정영목의 해설본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내가 거기에 있었소 <- 누구든 입다물게 하는 초필살기라 좀 사기인듯
그러니까 그게 누구였지? 럼포드였나
ㅇ 걔한테 한거
뭐 그런 거지
다시보니 감상이 없어서 급하게 추가했다.
지지배배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