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失職), 1971. 11.

하늘 끝으로
고가도로가 뻗쳤는데
-우리는 실직하였다.

우람스런 거인의
팔을 들어
하늘을 움켜잡으려는

기름진
밤의 고가도로.
-그렇지만, 우리는 실직하였다.
그럴 수가 있느냐?

우리들은 화성인인가?
머리들만 커다랗고
동체랑 팔다리랑 베베 꼬여
테이프를 늘어트린
밤의 산보자?

가을의 부랑자(浮浪者)
오늘은
가을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울고 있네.
나는 빈털터리, 모두 다 마셔 버리어
이젠 어쩔 도리도 없이 되었다.
이 거리는 아무도
내 일거리를 팔아 주지 않는다.
텡 비어 냉기 휘모는
통풍관을 둘러메고, 뒷거리를
헤메는 나는 부랑자.
슬프구나, 길 잃은 개보다도 외롭고
갈 데 없는 주정뱅이. 어둠만이
물귀신의 바다로 머리 위를 꽝꽝
울려 터진다. 나는 벌써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냐?

벌거숭이 바다, 1964.
비가 생선 비늘처럼 얼룩진다.
벌거숭이 바다.

괴로운 이의 어둠 극약(劇藥)의 구름
물결을 밀어보내는 침묵의 배
슬픔을 생각키 위해 닫힌 눈 하늘 속에
여럿으로부터 떨어져 섬은 멈춰 선다.

바다, 불운으로 쉴 새 없이 설레는 힘센 바다
거역하면서 싸우는 이와 더불어 팔을 낀다.

여럿으로부터 떨어져 섬은 멈춰 선다.
말없는 입을 숱한 눈들이 에워싼다.
술에 흐리멍텅한 안개와 같은 물방울 사이

죽은 이의 기(旗) 언저리 산 사람의 뉘우침 한복판에서
뒤안 깊이 메아리치는 노래 아름다운 렌즈
헌 옷을 벗어버린 벌거숭이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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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목록 둘러보다가 시도 같이 있길래 봤는데 좋아서 가져옴

노문학 1세대 번역가라 독갤에선 원래 유명하신 분이셨던 것 같은데,

시 몇 편 더 찾아봤는데 꽤 괜찮다..

국문학사에서도 꽤 중요한 시인으로 생각되는 것 같고,

세상엔 흘러간 시인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