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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과 악평을 함께 받는 책이라 들었다. 그리고 읽어보자, 왜 그런 평을 받는지 양쪽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꽤나 읽기 쉽고 흥미로운 소재들로(니콜라스 레이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등의 영화가 언급될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주제를 이끌어나가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좋고, 그 방향성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우리는 끝까지 우리 안의 의미를 탐색하며 우리를 포함하는 다양한 의미장 속에서의 가능성을 수용하고, 우리의 사회 역시 그래야 하리라는 주장으로 마무리함에 있어서 더더욱. 그런데 잠깐, 이건 그저 몇십 년 전의 실존주의가 아닌가?



솔직한 이야기: 나는 프랑스 실존주의 서적들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르트르의 <구토>나 카뮈의 <이방인> 등은 읽었지만 이론적인 의미에서 실존주의 서적들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내게 관심 있는 이야기는 대체로 키에르케고르의 선에서 (굳이 더 넓히자면 하이데거 정도겠지만, 이쪽은 애초에 해설서 이외에는 건들지도 않았으니 생략한다) 정리가 된다고 생각한 탓에 그렇기도 했지만, 프랑스 실존주의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들이 그리 설득력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 탓도 있다. 그러니 이런 약간 편견 섞인 무지를 기반으로 다시 돌아보건대,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의 결론과 실존주의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물론 전개하는 이야기의 근본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 마르쿠스는 어디까지나 구성주의라는 말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던 사조와 물리주의/유물론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세계관을 비판하고자 대상을 포섭하는 다양한 의미와 그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장을 내세웠을 뿐이다. 그러나 이 총체적일 수 없는 의미장들의 중첩으로 세상을 설명하며 그 세상 속의 개인의 이야기로 돌아감에 있어 약간의 진부함을 느낀 것도 어쩔 수는 없을 것 같다. 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후려치는 사조들이 과연 얼마나 공정히 평가 받았는지도 약간 의문이 들지만, 아무래도 이건 대중서적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의 의식의 방향성을 확 꺾어놓고자 하는 마음가짐에서의...... (사실 그런 의미에서 조던 피터슨 열풍이 유의미했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상아탑 바깥에서의 아우성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또한,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런 주제를 다루는 철학서에서 자주 나오는 무한 퇴행 논증에 약간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모든 의미장을 포섭하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하면서 저자는 A를 포함하는 세계 S가 S를 포함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포함의 순서 관계가 무한히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S의 존재 불가능성의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사실 수학에서 이런 주제는 꽤나 빈번하며 또한 능숙하게 처리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정의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포함해야만 하는 집합을 Complete Partial Order의 일환으로 가뿐히 채집할 수 있지 않던가? 이것이 그저 비유적인 논증이라고 하더라도, 수학에서의 논리가 논증에서 적용되지 않을 이유는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