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왜 읽을까? (정확히는 인문학서와 같이 실용적인 쓰임이 없는 책들) 독자가 자신보다 더 대단한 사람의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말미암아 독자의 성장을 꾀하는 것일 것이다.
혹은, 철학적 탐구를 즐기는 취미를 가지면, 재미를 위해 독서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저 두가지 경우에서 독서는 불필요하다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먼저 독자가 책으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과연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철학박사를 따고 인생을 만권의 철학서 암송에 갈아넣어도 책이 거의 없던 고대의 현자들을 능가할 수 있을까? 위대한 생각을 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끝없이 노력하여도 일반인은 결코 그 수준에 다다를 수 없다. 그럴 시간에 자신의 생산성을 개발, 곧 직업능력을 키워서 돈을 많이 벌고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낫다. 
독서를 하며 위대한 지성들에 비해 나 자신은 얼마나 하찮은 지를 깨닫고, 그 위대한 지성의 발끝마저 나는 따라갈수 없는 것을 느끼며 불행할 바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즐기며 멋진 경치를 즐기는 행복한 삶이 훨씬 가치있지 않는가? 따라서 인류에 족적을 남길 만큼의 대사상을 생각해 낼 그릇이 없는 자들에게는 독서가 아무런 필요가 없다. 

책을 재미로 읽는 부류에게는, 책보다 효율적인 쾌락(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더 많은 쾌락을 느끼는 것)을 주면서, 훨씬 생산적인 취미가 아주 많으므로, 독서는 최악의 선택지이다. 책을 재미로 읽는 이들은 여러 쾌감 중에 지적 유흥에서 오는 쾌감을 가장 선호하므로, 이들에게 바둑이나 상업영화 감상을 추천한다. 바둑은 사고력 향상에 독서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독서와 같이 느슨한 수동적인 사고가 아닌, 1대1 경쟁의 능동적인 사고이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어느 활동이 삶에 더 도움이 되는 지는 명백하다. 상업영화는 추상적인 창작물로서 책보다 훨씬 낫다. 소리도 나오고, 영상도 나온다! 그리고 굳이 힘들여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몰입해 즐길 수 있으므로, 낮은 에너지 소모로 큰 쾌락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여가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학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계층은 독서를 일절 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래서 하나의 유토피아를 생각해 보았다. 
국가는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국민의 최대행복이다. 국민은 언제 행복할까? 배부르고 사회에 만족할때 행복하다. 국가는 언제 배부를까? 다시말해 국가는 언제 최대의 생산능력을 가질까? 국민들이 자신의 재능의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이직없이 분업이 이루어 질 때이다. 전국민의 장인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들은 독서를 할 시간에 직업 능력개발을 하여야 한다. 국민은 언제 사회에 만족할까? 국민이 배부르고 생각하지 않을 때이다. 독서는 여러 이상적 가치들에 눈뜨게 만들어 괜히 현실에 불만을 갖게 만든다. 예컨데 국가 전체의 생산력과 개인의 자유와 같은 실체가 없는 형이상학적인 가치들의 비교를 하며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시위를 하거나 정치 참여를 할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직업에서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이므로, 국가의 손해이고, 이들이 사회를 바꾸려 시위를 하면, 경찰력 낭비므로 사회 질서 단속에 해를 끼치고, 정치참여도 입법자들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전혀 불필요한 낭비적인 행위이다. 
독서가 허용되는 집단이 있다. 학자들이다. 이들이 윤리에 대한 연구를 하여, 입법과 사법을 수행한다. 그리고 공학자들에게 연구윤리를 정해준다. 


삶을 1. 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2. 독서의 필요성이 뭘까 생각하면서 1. 단순하고 동물적인 것들만 좇는 삶이 가치있고, 2. 독서는 필요없다는 틀린 가정을 한번 해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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