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a65614aa1f06b367923425495bee7002074ae9be1617e689cd72b27e59efcd99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하지만나는두번다시하지않을일>


여기도 적지않은 고정팬이 있는 DFW의 <재나하>다.


그러니까 스스로 마이너를 자-청하는 소수의 누군가들이 되고 싶어하는

성공한 루저, 힙스터 아싸 캐릭터의 원조라고 알고 있고,

때문에 배배꼬여서 빈정거리고, 난삽하게 투덜거리고, 별 웃기지도 않은 유머를 시도하다 미끄러지길 반복하며,

특히 자신이 쓸데없이 민감한 걸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글들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논리적으로 정치한 글이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식견이 결코 박학다식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고급진 에세이였다.

물론 배배꼬이고, 빈정거리고, 별 웃기지도 않은 유머를 시도하며, 쓸데없이 예민해서 온갖 것에 투덜대긴 한다.


특히 언어의 정치성, 현대문학의 방향성, 소비대중문화가 예술을 어떻게 죽이는가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그 견해 자체가 훌륭함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지만,

그 견해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문장 그 자체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지점도 있었다.

각주 때문에 지저분해보이지만, 잘 쓴 글이다.


한국에서도 몇몇 작가들이 이런 스타일의 글을 추구한다고 알고 있는데

글쎄 이 정도의 깊은 지식을 정치한 논리로 뒤죽박죽인 듯 하지만 유려하게 풀어낼 수 있는 한국작가라면,

그는 이미 탈조선 레벨일텐데

그런 소식을 들은 적이 없으니

걍 흉내쟁이 따라쟁이일 공산이 높겠다.


인용문이나 하나 남긴다.

======================================



나는 지금 서른 세살이다.

세월이 벌써 한참 흘렀고, 매일 점점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매일매일 무엇이 좋고 중요하고 재미있는가에 대해서 여러 선택을 내려야 하고,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가능성이 차단된 다른 선택들의 박탈을 감수해 한다.

나는 차츰 깨닫고 있다.

세월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를수록 선택의 폭은 점점 더 좁아지고 박탈된 선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결국 내 인생은 평생 풍성하고 복잡하게 가지 쳐온 나뭇가지의 한 점에 다다를 텐데,

그 지점에서 내 삶은 그 하나의 경로로 제한될테고 이후에는 세월이 나를 정체와 위축과 부패의 단계로 몰아넣을 것이며

그러다 결국 나는 최후의 구조의 기회마저 놓치고 그동안의 모든 싸움이 허무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시간에 익사할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나를 그렇게 가두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선택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인다.

조금이라도 어른답게 살고 싶다면, 나는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한 박탈을 애석해하면서도 그것을 감수하고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