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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p까지

명제 정리만 신나게 할 예정


이 글에 들어가기 앞서 번역가님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제2장과 제1장과의 관련은 긴밀하지 않다. 매우 독창적인 문학 원론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장을 전체적 취지와 어떻게 연간시키느냐 하는 것은 이 책의 이해와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즉 사르트르는 여기에서 꺼낸 전제들로 이후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르트르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3장에서 사르트르는 불문학사조를 실제 프랑스 역사와 엮으며 작가와 작품의 흐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이것은 4장에서 현재에 대한 이야기에 이른다.


먼저 사르트르는 왜 작가가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닌지를 설명한다.

이것을 설명하며 사르트르는 몇 가지 전제를 내세우고 있다.


1. 사르트르의 인식론

사르트르는 인간이 무언가를 지각할 때, 우리가 그것을 드러낸다는 의식을 갖는다고 말한다.

즉, 인간을 통해서 존재가 거기에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각각의 자연물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지만, 인간이 현존함으로써

관계성 없는 것들에 관계가 맺어지며 그것들이 드러나게 된다고 사르트르는 말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세계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탐지자이긴 하지만 창조자는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안다.

그래서 우리가 보지 않는 세계는 또한 우리가 보지 않는 동안 깊은 혼수 상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는 사물을 드러내 보이는 존재다.'라는 내적 확실성과 아울러

'드러난 것에 대해서 우리 존재는 본질적이지 않다.'는 또 다른 확실성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내내 가지고 있는 관점이고, 어쩌면 지금 와선 조금 흔하게 생각되는 관점이기도 하다.

이것에 대한 또 자세한 언급은 나중에 나올 터이다.


2. 창조물과 창작자 간의 역설

사르트르는 창조의 주된 동기 중 하나를 세계에 대해 우리가 본질적이라고 느끼려는 욕망이라 말했다.

자신이 괄목하는 모든 세계를 예술에 고정시킴으로써

우리는 관계를 형성시키고, 질서를 형성시키고, 다양한 사물에 하나의 맥락과 통일성을 부여한다.

그러면 그것을 창조라고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창조물에 대해서 본질적이라 느낀다.

그러나 방금 설명했듯 예술가가 엮은 창조물은 하나의 대상으로 변모해가고, 예술가로부터 벗어난다.

창조물은 본질적인데 비해 창조 행위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옮아간다.


무엇보다 창조된 창조물은 남들 눈에는 '완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예술가의 눈에는 언제까지고 '결점투성이'로 보인다. 예술가는 언제든 창조물을 수정할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창조물은 고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말은 창작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창조물은 객체성을 띨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는 창작자 자신의 규준, 역사, 사랑, 기쁨이 들어있기 때문에

다른 이가 볼 때처럼 무언가를 받아들인다거나 객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


사르트르는 앞선 명제를 되풀이하는데,

지각에 있어서 대상은 본질적인 것으로, 주체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주어진다.


그런데 주체가 창조를 통해 본질성을 추구하고 획득하는 경우,

반대로 대상이 비본질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3. 글쓰기와 읽기, 작가와 독자

여기에서 사르트르는 이 전체적인 인식론을 글쓰기에 대입한다.

창조와 창조물 간의 본질성에 대한 역설이 글쓰기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 말에 따르면, 문학은 팽이와 같아서 오직 움직임을 통새허만 존재한다.

그것을 출현시키기 위해서는 읽기라고 부르는 구체적 행위가 필요하고,

그것은 읽기의 행위가 계속되는 동안에만 존재할 따름이다.


사르트르는 이후에도 이 명제를 써먹으며 논리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는 자기가 쓴 것을 스스로 읽을 수는 없다.

반대로 독자는 읽으면서 예측하고 기대한다. 독자는 항상 오직 개연성밖에 없는 미래를 향해서 자기가 지금 읽고 있는 문장보다 앞서간다.

이렇게 문학적 사물의 움직이는 지평선이 형성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독자의 기대와 미래와 미지가 없다면, 객관성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번역가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르트르는 이 말을 후일 수정했다.

가만 보면 은근히 논리만 어떻게 맞추려고 막 뱉는 것 같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사르트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쓴다는 것은 반드시 읽는다는 작업을 함축하는 것이며, 이것이 두 행위자를 요청하게 된다.

결국 정신의 작품이라는 구체적이고 상상적인 사물을 출현시키는 것은 작가와 독자의 결합된 노력이다.

예술은 타인을 위해서만, 그리고 타인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문학론은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장시키는데,

결국 독자가 읽는 것을 통해 상호 간의 본질성이 상정되고,


따로따로는 어떠한 의미도 형성하지 못하는 지리멸렬한 낱말과 문장을

독자가 읽는 것을 통해 종래에 하나의 통일성 아래 엮어냄으로써,

즉, 독자가 작품을 읽게 됨으로써, 작품의 테마, 주제, 의의가,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명제는 여기까지고, 이 뒤에는 이제 사르트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꺼내기 시작함

지금 3장 거의 다 읽었는데 내내 프랑스 문학사 얘기라 드르렁할 뻔

4장은 아마 정리 안할 것 같고, 3장까지만 어떻게 해봐야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