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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에셔,바흐> 최근에야 읽고 별로 맘에 안 들어서 별로라는 내용으로 아래 글을 써봤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제가 대작을 까는건 저한테 문제가 있어서겠죠
혹시 이 책 읽은 분 있으면 아래 글 한번 읽고 어디를 잘못 이해했는지 혹은 부족한지, 저를 까주시면 정말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 책의 문제는 양이 방대할 뿐 아니라 글의 소재들이 수학, 과학, 공학, 철학, 미술, 음악, 문학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도구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사실 개별적인 소재들(예컨대 DNA와 리보솜, 단백질의 관계)은 친절하고 쉽게 풀어쓰여 있기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어느 부분이든 한 챕터만 골라 읽어보면 교양서 수준의 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령 DNA를 레닌저 생화학을 읽으면서 배운다면, 더 깊이 있는 부분까지 다뤄야 하기 때문에 훨씬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그런 20개의 장들을 어떻게 엮어서 생각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인가를 간파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그 원인이 내가 저자의 의도를 읽어낼 정도로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한다면 뭐, (아마 사실이기도 할 것이고) 할 말은 없지만, 20주년 기념판 서문을 보면 그런 고충을 토로한 사람이 나 외에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호프스태터가 저술가로서 중요한 것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반부에서 다루겠지만, 그것이 이 책이 과대평가돼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그래서 '영원한 황금 노끈', '괴델의 고리' 따위의 추상적인 단어들은 결국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아마도 답답한 나머지) 직접 그 답을 공개했다.
"한마디로 GEB는 어떻게 생명이 있는 존재가 생명이 없는 물질로부터 나올 수 있는지 이야기하려는 매우 개인적인 시도이다. 자아란 무엇인가? 어떻게 돌이나 흙처럼 자아가 없는 물질로부터 자아가 나올 수 있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의식이라는 것을 괴델의 이상한 고리나 층위-교차 되먹임 고리를 언급하지 않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나는 말해야겠다. 지난 수년간 의식의 신비를 풀려고 시도한 수많은 책들이 이런 식의 사고 노선을 따라서 거의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고 어리둥절했다." (p.xv)
(저자가 말하는 의식(Consciousness)은 '나(I)', '자기(Self)', '자기-지시(Self-reference)' 등으로 표현된다. 즉 '존재가 존재 스스로를 바라보는' 현상을 의식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데 있어 핵심으로 보고 있다. 책에서는 종종 지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기계와 인간을 비교하는 여러 가설들에 대해 논평하는데, 지능과 의식은 서로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표현들이지만 일단 책의 주제를 구성하는 핵심은 의식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GEB를 3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고 감히 생각한다).
1. 의식은 자신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 바라보는 현상이다.
2.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따르면, 형식 체계는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요소(정리, 생각, 눈 뭐라고 부르든)를 가지고 있다. (이건 정말 요상하다. 분명 형식체계(예컨대 TNT)를 바라보는 관점(메타-정리)은 한 층 더 높은 층위(메타-형식체계)에 있는데, 사실 그 층위는 원래의 형식체계에 포함되어 있다! 이걸 책에서는 이상한 고리 혹은 괴델의 고리라고 부른다.)
3. 그런데 형식 체계는 사실 무의미한 기호들로부터 탄생하며, 패턴이 생겨날 때 어떤 실재와 동형성(isomorphism)을 가짐으로써 의미를 획득한다. 자, 이제 3, 2, 1 순서로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의식과 하등 연관이 없어 보이는 물리적 회로(예컨대 뉴런으로 이루어진 뇌)로부터 의식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이게 GEB에서 말하고자 하는 점이다(라고, 다시 한번, 감히 생각한다). 일단 짚고 넘어갈 점은, '위 설명대로라면 그럼 TNT도 의식을 가진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아니다. 위 3줄 요약에서 1번과 2번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저자도 그걸 알기 때문에 의식이 단순히 on/off 현상이 아니라, 정도(degree)가 있는 현상이며,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복잡한 자기-지시가 존재해야만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 이렇게. "괴델의 이상한 고리는, 나에게는 그 개념을 위한 본보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내용이 빈약한 이상한 고리일 뿐이고, 그것은 어떤 유기체의 뇌와 비교해서도 그 복잡성이 형편없는 체계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후략) (p.xiv)"
GEB가 다룬 방대한 양의 예시들은 두 가지 존재 목적이 있다고 보이는데, 하나는 위 3줄 요약의 핵심인 형식체계 내에서의 '자기-지시' 구조의 등장을 잘 이해하게 하기 위한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그 구조의 매력을 느끼게 하기 위한 일종의 변주이다. 즉 저자는 의식의 탄생을 설명하는 핵심이 '괴델의 고리'라는 점을 잘 이해시키고 싶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나머지 그 많은 말들을 1000쪽이 넘는 책 안에 꽉꽉 눌러 담았던 것이다.
그러면 과연 (1) GEB는 어느 정도로 가치 있는 저작인가? 그리고, (2) 위 3줄 요약에 나타나있는, 의식이 무의미한 기호로 이루어진 패턴으로부터 탄생한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로 가치 있는가? 이 두 질문은 겹쳐져 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해보겠다. GEB의 주제는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의식에 대한 연구에 있어 대단히 큰 학문적 기여를 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의식이 어려운 이유는 도대체 그게 뭔지부터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신은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은 '어떤 사실을(가령 배고프다는 느낌을) 의식합니까?'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는 너무 어렵다.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처럼 의식은 분명 '자기-지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게 다인가? 정말로 괴델의 고리가 굉장히 큰 복잡도를 가지면 자연스럽게 '의식'이 생겨나는가? 그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의식은 단순히 자기-지시일 뿐 아니라, 그걸 '느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의 난해함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이 네이글(Nagel)의 박쥐 비유이다. 그것은 우리가 박쥐의 모든 뉴런의 활동과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박쥐가 그 순간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즉 박쥐의 의식은 어떠한지) 공감하게 해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내용의 사고실험이다. (<What Is It Like To Be a Bat?>을 참고하라.)
즉 GEB의 주제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아이디어이기는 하지만, 핵심 연결고리를 결여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논증은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설을 이해시키고 또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완독 이후에 한편으로는 의식 연구에 있어 좋은 (어쩌면 핵심적인) 인사이트를 얻었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단지 그뿐이라는 허무에 맞닥뜨리게 된다. 책의 분량에 비해 그것이 제시하는 핵심 주제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비록 그것이 매우 흥미롭다고 할지라도, 빈약한 주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차라리 저자가 이 책에 대한 오해라고 못박은 평가인, "수학, 음악, 미술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을 공유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책이었다면, 오히려 더 좋은 평가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는 이 책은 오히려 굉장히 훌륭하다. 하나의 소재를 놓고 연관된 다른 소재들에 대해 세련되게 설명하는 책으로서는 말이다. 이러한 면에서는 문학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주장을 향해 흘러간다는 점이다. 에셔나 바흐는 물론이고 괴델마져도 '양념'에 불과하며 핵심 주제는 '무의미한 기호로 이루어진 체계로부터의 자기-지시의 탄생'이라면, 이 책은 빈약하다는 평가를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또, 감히 생각한다. 스스로 그렇게 명확한 핵심 주제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강화하고 증명하는데 지면을 쓰지 않고, 오히려 이해시키고 흥미롭게 만들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독자가 수학, 과학, 전산학, 논리학에 큰 관심이 없지만 지적 호기심이 크고 새로운 지적 자극을 필요로 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면,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GEB는 인류가 고안해낸 각 분야에서 어떻게 이상한 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지 아주 친절하게 안내한다. 이미 심리철학(philosophy of mind, 심리학이 아니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GEB의 과정과 결론 모두가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다 읽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반박이 안됨
개에바
GEB를 끝까지 읽고 쓴 평에 '재귀'라는 단어가 언급되지 않으니 이상한 기분이 듬...
읽다가 너무 길고 레퍼런스랑 문체가 휙휙 바뀌어서 피곤해서 관뒀는데 네가 말한 123의 핵심이 잘 드러난 부분 있으면 ㅊㅊ좀
일단 개역판에만 있는 20주년 기념 서문이 가장 좋은 해설인 것 같습니다. 본문 1부에서는, 1~8장은 형식체계를 비롯한 기본적인 배경지식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읽어야 할 것 같고 (다만 모든 부분을 이해할 필요는 없고 각 장의 핵심 개념만 이해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3장에서는 96쪽의 그림 18만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본문 2부에서는 12장과 20장이 상대적으로 가장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놓은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개역판 기준 520쪽부터인 '자기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절부터가 그나마 좀 직접적으로 핵심에 근접한 것 같아요ㅠ
아 14장도요ㅠ 양념이니 뭐니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대해 깊게 설명한 부분이니까
근데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끼던 감상이랑 네 감상이랑 일관된 해석을 갖는 듯 좋은 글 ㄱㅅ
좋은 감상평인듯 개추줬어요
중요한 핵심 부분을 잘 요약하긴 했는데, 저게 끝은 아닌듯. 책에 나오는 것처럼 DNA는 복제되는 '틀'이면서 복제하는 '도구'잖아. 문제는 이상한 고리 사이에도 여러 층위가 존재한다는 거지. 컴퓨터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선불교로, 아직 찾지 못한 층위에 대한 탐색과 어떤 규칙성이 좀 가미돼야하지 않나
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ㅠㅠ 확실히 선불교 관련 내용은 아는게 없어서 다 이해 못한 채로 읽었었어요. 컴퓨터-인간 사이도 컴퓨터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내지 인간의 고유한 사고활동을 따라잡을 수 있는지 정도를 주제로 보고 읽었는데 선불교까지 엮어서 고리의 발전단계(?)를 설명하나보네요! 다시 읽어볼때 기억하면서 봐보겠습니다ㅠ
그걸 다시 읽겠다고...?
이정도 인내심이면 인내심으로 노벨상도 받겠다
다시보니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었네요ㄷㄷㅠㅠ
오 학교 도서관에서 누가 이거 읽고 있었는데 - dc App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59885&page=1
댓글대신 글로 썼어여!
이 책은 호프스테더의 지극히 개인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또 그 지점에서 맺었기 때문에 서술과 근거의 정확성이 어느 정도 모자람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에 관한 연구에 있어 대단히 큰 학문적 기여를 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라고 하셨는데, 책이 어디까지나 과학 교양서인 만큼 학문적 성취의 부재에 대한 감점은 과하게 가혹한 평가인 듯싶네요. 그 목적이라면 유관 분야의 논문을 읽는 쪽이 더욱 맞는 길이라고 봅니다. 방대한 분량에 비해 주장과 근거가 빈약하고, 그 대신 아이디어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집중하였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오히려 이 책의 성취가 바로 그 방식의 내용 구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포장하고 비전을 제시해 180년대부터 수많은 이들이 인공지능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덕분에 지금과 같은 세태가 되었으니까요(물론 호프스테더는 요즘의 인공지능 연구가 그가 제시한 비전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고 불평하지만..). 호프스테더의 저작은 논증문보다 일종의 예술품, 예언서에 가깝다고 봅니다. 주제적, 구조적 다양성에서 비롯된 비유를 겹쳐냄으로써 핵심 아이디어를 포착하려는 시도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에 대한 엄밀한 검증은 미래에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 작성자인데요 며칠 전의 제가 완전 핀트 나간 소리를 써놨네요. 쨌든 거두절미하고 글쓴이분께 하고 싶은 말은 책을 다시 읽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부분 중에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요. 한 문장만 가져와서 지적하는 게 좀 그렇긴 해도 양해부탁드릴게요. "왜냐하면 의식은 단순히 자기-지시일 뿐 아니라, 그걸 '느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써놓으셨는데, 바로 그 특성을 '이상한 고리'라고 칭하는 것이 이 책의 포인트예요. 자아는 일종의 패턴인데, 패턴은 본질적으로 반복되어야 하고, 반복은 본질적으로 시간과 같은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 기준이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확립될 수 있기 때문에 일종의 패러독스가 만들어져요. 그게 이상한 고리
그런 이상한 고리, 즉 어떤 패턴(의식)으로부터 의미(자아)가 출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의미(자아)가 어떤 패턴(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인과 관계의 뒤틀림을 관찰한 다음, 거기서 끝내지 않고 사람도 그런데 기계라고 안 될 거 있나? 까지 나아가면서 기계도 자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까지가 책의 핵심인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