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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르트르가 여태까지 말한 이야기에 따르면,

작가의 창작은 읽기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여기에서 문학은 호소라고 말한다.

이것은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인데,

요컨대 작가는 주관성에 의해 미적 대상을 스스로 출현시킬 수 없으므로

절대적인 시각으로 예술 작품이 출현하길 바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의 자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작가의 호소란 이 독자의 자유를 향한 것으로,

이를 통해 독자는 미적 대상에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


사르트르의 말에 의하면, 책이란 목적으로써 제시되는 것이다.

도구라는 건 수단인데, 도구는 결국 사용자가 사용하는 방식,

즉 사용자의 자유에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책은 자유를 인정하고, 신뢰하고, 자유로부터 행위를 요구한다.

따라서 책은 독자의 자유에게 자신을 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여기에서 칸트의 말을 비판하며 자연미를 부정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칸트가 말한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 대해서,

예술이 목적을 가지지 않지만, 그 이유는 예술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라 한다.

즉 작품은 처음부터 정언명령의 차원에 위치한다.)


사르트르는 예술은 호소이기 때문에 곧 가치라고 말한다.

책을 펼치게 되는 순간 작품이 목적으로써 나타나,

창조적 행위를 요청하게 되고, 자유가 체험된다.

이러한 절대적 목적 자체가 곧 사르트르에겐 가치인 것이다.


결국 작가는 독자들의 자유에 호소하기 위해 쓰고,

자기 작품을 존립시켜 주기를 독자의 자유에 대해서 요청한다.

그러나 요청은 그걸로 그치는 게 아닌데,

작가는 또한 독자들에게 신뢰를 되돌려주기를 요청한다.

독자들이 자유를 인식하고, 동일한 호소를 통해 작가의 자유를 환기시켜 주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작가와 독자와의 신뢰 관계를 내내 중시함)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심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책의 여러 다른 부분들을 자유로이 서로 연결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게 작가에 의한 의도라는 보장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이러한 질서를 확신하는 것은

책을 연 순간, 책의 원천이 인간의 자유에 있다는 것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르트르는 감정과 정념 본위의 예술을 부정한다.

(이러한 일명 '미적 희열'에 대한 얘기는 앞으로도 계속 다뤄짐)

글을 쓸 때 작가는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즉, 독자가 그렇듯 작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로운 감정으로 변형하는 것,

다시 말해 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 상대를 신뢰하고, 기대하고, 자신이 요구하는 만큼 상대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신뢰 자체는 상호간에 자유가 행사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가 강요할 수는 없기에 가능한 고매한 마음이다.

고로 읽기란, 작가와 독자 사이 맺어진 고매성의 협약인 것이다.



마지막은 미적 대상과 미적 희열에 대해서 추가로 조금 더하고,

지금까지 내보인 견해를 통해 현실 변혁과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함

번역자님께서 생각하시길 이 이야기가 잘 맞물리지는 않는다고 하심

어쨌든 사르트르의 기본적인 현상학적 견해는 거의 끝났고,

이젠 정말 드르렁 마려운 현실 문학 이야기가 쭉 이어지게 됨

불문학사 정리할 거 생각하니까 벌써 기쁨 아 ㅋㅋ


2장 나머지는 그리 길지 않으니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