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원래는 댓글로 적을려고 했는데 먼가 길어져서 따로 글로 팟어용.ㅎㅎ

<괴델, 에셔, 바흐> 뒤늦게 읽은 후기윗 글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 책은 대부분의 내용이 은유로 되어있고, 그 특성으로 인해 읽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해석이 가능하다.또한 매우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독자의 기반지식에 따라 다른 이야기처럼 비춰지기도 한다.기호학자에게는 상징의 이야기로, 언어학자에게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로, 인공지능 연구자에게는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는 것이다.

순수히 물질로만 지능을 만들고자 하는 자 또는 의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에겐, 크게 두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기호주의와 연결주의의 오랜 대립의 이야기이다.이 책은 그중에서도 인간의 의식의 핵심이 이성과 관련 있다면 무시할 수 없는 특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호프스태터는 기호주의자이다. 그는 지능의 정보처리를 기호와 그 기호의 조작으로 인한 계산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기호주의는 인간의 이성의 핵심을 논리에서 본다. 공리와 추론규칙으로 이루어진 상징 조작체계,이런 관점에서 세계는 명제들로 표현할 수 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꿈의 세계처럼 '세계는 사실(명제)들의 총체'이고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가 된다.우리가 만약 명제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의 참과 거짓을 판별가능하며, 그런 증명들의 합으로 세계는 해석가능 또는 표현 가능하게 된다.
우리의 논리 시스템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호프스테터는 괴델의 증명을 꺼내든다.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우리가 진리의 도구라고 생각했던 시스템들이 사실 그렇게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증명을 들이민다.호프스테터가 '자기 지시'라고 부르는 것을 허용하는 2차 논리 또는 술어논리 시스템은 세상을 논리적 시스템 안에 담아두기 위해서도,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장치인데,이 시스템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것의 성질인 스스로를 부정하는 증명 또한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다.호프스태터는 이 모순의 고리가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언급하지 않는 세계관이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성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나'라는 상징을 사용하는게 사실이라면(호프스태터는 이 형식체계가 우리 의식의 근간이라 생각한다.)어쩌면 모순은 우리의 인식의 본질에서 필수적이고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식이 세계의 은유(상징)인 호프스태터의 생각처럼, 호프스태터는 이 책의 주요 화두를 '모순'으로 뽑아들었고 책은 모순을 은유한다.책의 제논, 아킬레우스와 토끼, 개미 부인, 조주 선사 등은 이 책이 모순에 대한 이야기임을 은근하게 암시한다.모든 것들이 이 모순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지시한다. 우리가 세계를 상징으로 파악하는 것처럼, 이 책 자체가 호프스태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상징의 역할을 한다.상징은 은유이기에 각각 이야기들은 모두에게 다른 내용을 속삭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고리로 엮는 순간, 호프스태터가 지시하는 것을 알아보게 되는 순간(순전히 착각일수도 있다.)모든 이야기가 명확해지고 책의 구성 자체도 하나의 의도된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호프스태터가 주제에 대해서 끝까지 명확히 말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사족 같지만 박쥐 비유가 이 책의 반론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박쥐의 비유는 우리가 다른 존재의 경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지 박쥐가 '나'라는 자기 인식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철학적 좀비 논변처럼 우리가 다른 의식있는 존재들을 알아 볼 수 있는지 또는 중국어 방 논증처럼 의식적 행위에 정말 의식이 필요한가와 같은의식 자체를 겨냥한 질문이 이 책에 대한 반론으로 더 적합할 것이며, 우리는 아직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특히 중국어 방 논증은 기호주의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 책과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책의 주장이 어느 정도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관점에서 아직 명확하지 않다.우리는 기호주의가 패배하는 것을 보았고, 연결주의가 힘을 발하는 시간에서 살고 있다. 자연어 해석, 이미지 인식, 추천 엔진, 객체 판별 등 지금 보고 있는 거의 모든 AI의 성공들은 사실상 연결주의의 산물이다.기호주의의 접근법의 문제는 곧 논리 시스템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정의'와 '추론 규칙'이 자연적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적어도 그렇게 여기는 부류가 있다.)세계를 명제로 표현하고 싶다면 모든 '정의'와 '추론 규칙'을 고철 친구에게 전부 알려주어야 한다. 정말로 인류의 온톨로지가 통합 될 수 있는가?아니 그 이전에 '통합된 정의'라는 것이 정말 세계를 포착할 수 있는 수단이긴 한 것인가? 그리고 이 책이 주장하듯 그것은 모순 또한 끌어 안아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호프스태터가 틀렸다고 말하긴 아직 이르다. 연결주의의 성공 역시, 방법론의 성공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보이기 때문이다.연결주의의 성공은 방법론의 승리가 아니라 실용성의 승리이다. 연결주의는 기호주의보다 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지능을 만들어 냈다.그러나 거기엔 논리가 없다. 신경망에선 아직 어떠한 설명도 들을수가 없다. 그것은 그저 적응하고 자신의 유용성을 보여준다.인간은 분명 논리적인 방식으로, 기호와 상징을 통해서 사고하고 소통하며 설명하는 시스템 또한 보유하고 있다. 변화무쌍하고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세계에 적응하면서도상징을 포착하는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기호주의자 호프스태터의 꿈이 끝났다고 선언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 세상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