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위대했던 남자의 이야기 - 위대한 개츠비 독후감 - 독서 마이너 갤러리 (dcinside.com)


최근 롤 시즌 말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독갤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이버 사이코들에 의해 번번히 내 전진이 좌절되고,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 독갤에서 대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전에 여행책 대회도 쓸려고 했다가 까먹고 못 썼는데, 이번에는 내 독갤 접속의 가장 큰 방해물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번에야 말로 갤럭시 워치를 타겠다는 일념으로 글을 써 본다. 


먼저 간단한 배경설명을 첨부하자면, 저 글은 내가 1년 전에 쓴 글이다. 당시 나는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혼자서 드라마를 찍고 있었고, 저 글도 소주 한 반병 빨고 쓴 글로 기억한다. 참고로 지금도 솔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 중 여성분이 계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암튼 헤어진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감정이 좀 정제가 안된 상태라 지금 보면 심히 오글거린다. 그렇다면 이런 글을 내가 왜 골랐을까? 그 이유는 밑에서 이야기하겠다. 이유를 고르기 전에, 먼저 이 글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실 내 글에서 장점을 굳이 찾는다면 진솔함을 말할 수 있겠다. 이 글은 지금 보면 한 없이 오글거리고 자의식 과잉이 느껴지기 까지 한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모든 문장이 진심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진심으로 치열하게 사랑해보고, 냉혹한 현실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아직도 나는 개츠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사랑은 진심이라기엔 너무나도 계산적이었고, 이득을 챙겼다기엔 너무나도 낭만적이었으니까. 그 때의 연애를 통해 개츠비가 비로소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비록 지금 보기엔 너무나도 오글거리고 미성숙한 감정으로 가득하지만, 그 때 나는 그러한 감정을 온전히 녹여가며 저 글을 썼다.


필요한 점?


사실 내가 쓴 글이지만 읽기에 좀 고역이었다. 일단 너무 오글거린다. 스스로를 무슨 비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것도 오글거리고, 오만했던 소년이니 하는 워딩이 심히 거슬린다. 솔직히 말해 내 연애는 다른 연애에 비해 엄청 특별하지 않았다. 물론 남들과 조금 다른 연애를 하긴 했지만, "평균적인" 연애가 사실 어딨겠는가. 혼자서 비운의 주인공인 척 하는 게 매우 꼴받는다.


개츠비에 대한 평가는 사실 그 때에 비해 바뀐 게 없다. 왜냐하면 책을 다시 안 읽었으니까. 저 감상문을 썼을 때가 내가 개츠비를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다. 당연히 그 때 이후로 뭐 크게 개츠비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딱히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개츠비를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되돌려서, 스스로가 운명이니 하는 것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신이 되려는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뭐 개츠비를 전문적으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콧웃음칠 평가일 수도 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그 이상을 읽어내진 못했다. 


그럼 대체 이 감상문을 왜 고른 거임?


그럼 대체 나는 왜 이런 오글거리는 글을 다시 끌어올리고 스스로의 결과물을 까내리는 걸까? 혹시 나는 내 결과물을 남들에게 비난당하고 짓밟히면서 묘한 쾌감을 얻는 걸까? 물론 그렇진 않다. 나는 그런 쪽에 흥미가 없다. 그러면 이 책을 대체 왜 고른 걸까?


내가 이 감상문을 고른 이유를 말하기 전에, 먼저 감상문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해보자. 감상문이란 뭘까? 감상문이란 내가 어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쓴 글이다. 그렇다면 감상문은 무엇에 관한 글일까? 당연히 감상문은 내가 읽은 "책"에 관한 글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읽은 책"에 관한 글이다.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을 보고 쓴 지극히 보편적인 글인 동시에, 그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을 쓰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감상문은 개츠비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개츠비를 읽은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 글은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이도 하지만, 그 개츠비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대한 개츠비라는 책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내용은 100년 전 읽었던 사람과, 지금 나와, 100년 후에 읽은 사람이 모두 같은 내용을 볼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변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보는 독자들은 모두 다 다르다. 설사 같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 개츠비를 읽을 내가 다른 것처럼. 똑같은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도 똑같은 감상문이 나올 수가 없다. 감상문에서는 책의 내용이 독자의 경험과 환경, 사고방식을 거쳐서 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상문은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와 함께, "독자의 이야기"도 같이 들어간다. 


우리의 이야기는 잉크로 쓰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이야기는 감정으로 쓰여진다. 슬픔, 고통, 기쁨. 환희, 절망, 희망... 이 모든 감정들을 연료로, 우리는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나의 가치관, 나의 생각, 나의 사고방식 이 모든 건 결국 이때까지 내가 살아온 궤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감상문은 바로 이런 "나의 이야기"가 "책의 이야기"와 만난 순간에 쓰여진 글이다. "나의 이야기"가 "책의 이야기"를 이해할 만큼 성숙해진 순간, 책과 나는 공명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는 왜 이 감상문을 골랐을까? 바로 이 감상문이 "나의 이야기"가 "책의 이야기"가 만난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결코 "책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미성숙한 소년이였던 내가, 경험이라는 스승의 회초리를 맞고 나서 마침내 개츠비를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책의 이야기"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 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비록 내 이야기는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의 이야기" 속 주인공 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그들과 끊임없이 공명해가며 "나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내간다. 모든 감상문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이다. "나의 이야기"가 "책의 이야기"와 만나서, 새로운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나를 점점 더 채워간다. 


그러니 나는 내 부족하고 서툰 감상문을 담담히 인정한다. 그리고 그 어설픈 감정들과 찌질한 모습 역시 긍정한다. 그것 역시 "나의 이야기"가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내가 책과 투쟁하고, 때론 부정하고, 때론 사로잡히면서 만들어 낸 수많은 이야기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원동력이다. 비록 지금 보면 한없이 미성숙하고 어린 글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그런 어리고 미성숙한 "나의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여전히 나는 어리고 미성숙했을 테니까. 내가 스스로를 "오만한 소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난 여전히 오만한 소년이었을 테니까. 난 여전히 "책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채, 허세와 어리석음만 가득했을 테니까. 저 감상문은 내가 얼마나 어리고 미성숙했는지를 보여주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런 서툴고 부끄러운 감상문을 내 주제로 삼았다. 결국 모든 감상문은, 책의 이야기인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모든 감상문은 "책"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책을 읽은 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독갤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독갤에 있는 모든 감상문들은 독갤러들의 이야기가 책의 이야기와 만난 그 순간에 작성된 글이다. 때로는 책의 이야기를 부정하기도 하고, 때론 책의 이야기에 사로잡히기도 하면서 우리는 또다른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가는 중이다. 비록 그 중 몇몇은 자신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는 남들의 이야기처럼 빛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울해질 수도 있고, 그걸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부정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은 과거라 할지라도, 과거의 자신 역시 그 당시에는 치열하게 투쟁하고 사랑하고 노력했던 사람이며, 그 과거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성숙한 나 자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독갤에 있는 모든 감상문은 책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고, 자기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런 자신이 어떻게 성숙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갤에 있는 모든 감상문은 좋은 감상문이다.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으니까. 물론 "잘 쓴 감상문"을 필력이나 구성, 논리성 등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적어도 자기에게 있어서, 그 감상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감상문이니까.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그런 "나의 이야기" 덕분에 자신이 성장했으니까. 모든 감상문은 좋은 감상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