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감상문
한 위대했던 남자의 이야기 - 위대한 개츠비 독후감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50111
목차
0. 들어가며
1. 개요
1.1 에드워드 H 카, 미셸 푸코
1.2 메타적 작용
2. 감상문
2.1 해석에 의한 의미부여
3. 메타 감상문
4. 위대함과 자기긍정이라는 수식어
5. 마치며
0. 들어가며
이 감상문은 감상문에 대한 감상문이면서, 감상문에 대한 감상문에 대한 감상문이다. 그리고 좋은 감상문의 요건에 대해선 논하지 않을것이다. 그 요건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해서 짧게 다룰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경쟁자 저격이나 정신분석이 아니다.
1. 개요
감상문은 작품에 대한 감상(분석 등등)을 담은 메타적인 글, 메타 감상문이란 감상문에 대한 감상을 담은 메타 메타적인 글이다. 오늘 이 글은 메타 메타적인 글에 대한 메타적인 글, 메타 메타 메타적인 글이다. 두 감상문의 저자가 같기 때문에 일관적인 '메타적 작용'에 대해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메타적 작용'이라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여기에 대해 독갤러들도 잘 아는 두 사람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에드워드 H 카'와 '미셸 푸코'를 통해서.
1.1 에드워드 H 카, 미셸 푸코
카의 대표작 '역사란 무엇인가'는 참 친절하게도 첫 장의 마지막에 자신이 전하고자하는 바를 명확하게 해주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이는 과거가 단지 객관적 사실로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역사가에 의해 끊임없이 해석되고 의미를 부여받아야함을 함축한다. 그러니 단지 사실에 지나지 아니한 일은 아무런 의미없다. 그것은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인간은 가끔, 자주 후회하고 회상한다.
푸코의 '저자란 무엇인가' 강연중 인용하자면 '저자는 작품을 채우는 의미작용의 무한정한 원천이 아닙니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보다 선행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의미는 단순히 작가에 의해서만 부여되지 않는다. 국가, 정치채제등 작가 바깥의 수많은 부분이 작품에 의미를 부여한다. 평단의 페미니즘 찬양을 하루이틀 본 게 아닌 독갤러들은 진절머리나게 느낄 것이다. 다른 예로, 故마광수 교수가 아니었다면 윤동주는 지금의 위상을 가졌을까?
1.2 메타적 작용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메타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무언가는 '해석을 통한 의미부여의 결과'와 동의어라는 것이다. 푸코가 더 포괄적인 주장이지만, 카는 푸코와는 다르게 역사해석을 역사학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권력관계를 염두해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참고대상이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역사이며 권력적 관계가 적극적으론 표현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해석은 의무로서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감상문
감상문에서 일어나는 메타적 작용은 작품의 서사와 저자의 의도, 당시의 사회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다. 이 글에선 작품의 서사, 특히 작품의 주인공이자 글쓴이가 스스로와 동치시키는 개츠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감상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글쓴이 과거 > 개츠비분석 > 글쓴이분석 > 글쓴이와 개츠비 비교' 글쓴이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 개츠비를 실연과 '냉혹한 현실의 벽'이라는 경험을 한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주도 한 병 빨고서 메타적 작용이 일어난다. 바로 '글쓴이와 개츠비의 비교'다. '나는 개츠비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강한 메타적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2.1 해석에 의한 의미부여
글쓴이는 이 감상문에서 개츠비를 과거를 되돌리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로 해석한다. 데이지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꿈이 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붙이려하는 사람'. 개츠비는 냉혹한 현실의 벽에 저항하고 나아간다. 데이지가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던 '깨어진 현재'를 위해, 행복하기만한 '영원한 현재'속에 살기 위해서.
그러면서 자신은 개츠비처럼 행복하기만한 '영원한 현재'에 살고 싶었으나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으로 표현한다. 꿈을 쫓던 두 사람이 사랑했지만 계속 꿈을 꿀 순 없었다.
그런 개츠비를 보고, 혹은 자신을 보고 같다고 하면서 다르다고 했다. 개츠비를 위대한 사람으로 그리며 자신을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하는 건 패배주의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개츠비는 '위대하니까'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냉혹한 현실 앞에선 꿈도 사랑도 포기할 수 밖에 없으니까. 이런 패배주의는 영웅주의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영웅은 이겨내지 못할 악을 마주한 약자를 전제로 한다. 개츠비를 위대하다 말하는 건 그가 위대하기 때문 보다는 그가 위대했으면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개츠비를 이해한 게 아니라 개츠비에 대한 해석의 방법을 발명한 것이다.
3. 메타 감상문
메타 감상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감상문이 아닌 감상문을 쓰는 글쓴이 본인에 관한 이야기다. 저 글의 장점에 진솔함, 자의식과잉등을 들었으니 뭐. 근데 필요한 점이 뭔지 모르겠다. 오글거리고, 꼴받는데 관점, 평가도 안바뀌고. 좋은 감상문에 필요한 게 뭐라는 거야? 읽어보면 알겠지만 별로 메타 감상문 대회의 취지와는 안맞는 글이다. 오로지 메타적 작용만을 의도하고 쓴글로 보인다. 메타적 작용에 대한 메타적 작용,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의미부여, 텍스트의 의미를 부여하는 저자의 바깥.
4. 위대함과 자기긍정이라는 수식어
메타 감상문에서 글쓴이는 아주 명시적으로 '모든 삶은 하나의 이야기다'라고 하면서 그러한 이야기, 또한 이야기의 해석 주체로서의 독자를 긍정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감상문, 감상문을 쓰던 '오만한 소년이던 나'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스스로의 역사로.
개츠비와 스스로를 비교하던 글쓴이는 또다시 변화의 과정을 거쳐 개츠비가 아닌 개츠비의 위대함을 이야기한 자신에 대한 해석을 발명했다. 그럼으로 감상문에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대충 성장통 정도로 요약해볼만한 자기긍정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나의 이야기와 책의 이야기가 만나는 변증적 과정을 통해 글쓴이는 성장으로 보이는 자기긍정의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친 자신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모든 감상문을 좋은 감상문이라 말한다. 갤럭시 워치를 얻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이런 결론을 내다니. 참 소년만화스럽기 그지없다.
5. 마치며
이러한 해석은 수식어를 통해 글을, 저자를 치장한다. 외출하기 전에 꽃단장하듯이 무의미한 사실에 가치를 덧칠한다. 어떤 화장이 좋은 화장인지는 그 시대의 화장법에 달렸다. 화장 기술이 아닌 방향성에. 결국 좋은 감상문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은 시대가 관철하고자 하는 가치라는 대답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합리성이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처럼 각자가 자신의 주장을 시대가 관철하는 가치라고 말하는 투쟁의 결과다. 가치는 말 그대로 권력적으로 구성된다. 그러니 무엇이 좋은가라는 질문은 무엇을 좋은 것으로 할거냐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이제 감상감상감상문까지 나오네 ㄷㄷㄷㄷ
ㅋㅋㅋㅋㅋㅋㅋㅋ정말 잘 읽었습니다! 개츠비는 위대한 것이 아니라 위대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맞는 것 같아요ㅋㅋㅋㅋㅋ 그 당시에 저는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ㅋㅋㅋ 그리고 메타 감상문에 대한 평가는 다 맞는 말이에요ㅋㅋ... 사실 제가 대회를 꼼꼼히 읽어보지 못한 제 불찰이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필요한 점이나 잘한 점 싹 다 빼놓고 메타 감상문이라는 것만 쓸려고 했는데, 자세히 읽어보니까 주제도 있고 꼭 넣어야 하는 내용도 있어서 좀 어거지로 끼워넣긴 했습니다ㅋㅋㅋㅋ 이왕 쓴 거 버리긴 아깝고 해서요ㅋㅋ;;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타메타메타 독서문은 언재나오나요
하고자 하는 말이 고스란히 본인에게도 적용되버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