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의 젊은 철학자들에게 에이어는 다소 철학적으로는 예스러운 사람처럼 보였다. 정도는 덜했지만 스트로슨 또한 그랬다. 그 저변에 깔린 큰 이유는 현대 형식 논리학과 그들의 관계 때문이었다. 공식적으로, 에이어는 현대 형식 논리학에 우호적이었고 스트로슨은 비판적이었지만 둘 다 이를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현대 형식 논리학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시절에 철학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의 철학자들은 어쩔 때는 형식 논리학을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기초 산수처럼 단순한 계산(sums)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에이어와 스트로슨이 현대 형식 논리학에 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대서양을 휩쓸며 건너온 언어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다루는 데 있어서 좋지 못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이 새로운 흐름은 크립키와 루이스(그는 적어도 1970년대에는 형이상학자이면서 언어철학자이기도 했다)를 비롯해 도널드 데이빗슨(Donald Davidson),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am), 데이빗 카플란(David Kaplan), 로버트 스톨네이커(Robert Stalnaker), 키스 도넬란(Keith Donnellan), 리처드 몬태규(Richard Montague), 그리고 바바라 홀 파티(Barbara Hall Partee)와 같은 철학자와 언어학자들에 의해 이끌어진 것이었다. 언어 철학의 새로운 흐름은 현대 논리학에 기반을 둔 형식 의미론을 자연 언어에 적용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에이어는 언어 철학에 구체적인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새로운 흐름에 대한 그의 분노는 흄이 제시한 구분, 즉 사실의 문제와 관념의 연결이라는 구분을 위반하는 범주인 필연적 후험성과 선험적 우연성을 제시한 크립키의 논변에 집중되었다. 에이어는 연례적으로 “Informal Instruction”이라는 대중에게도 열려있는 수업을 개최했는데, 여기에서는 최근에 출간된 철학적 작업에 대한 짧은 발표를 하고 그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새로운 흐름에 몸담고 있었던 똑똑한 대학원생들도 다수 참여했는데 이는 에이어가 곧잘 토론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었다. 매년 그는 크립키의 후험적 필연성과 선험적 우연성을 반박하고자 하는 짧은 논문을 발표하고자 했는데, 사실 그의 논문은 크립키가 바로잡고자 했던 바로 그 혼동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가 발표를 끝내고 나면 그에 대한 대학원생들의 토론이 이어졌는데 사실 그들이 에이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크립키를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결국은 허사로 돌아갔다. 스트로슨은 에이어보다는 훨씬 언어 철학자였지만 언어 철학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그의 이해 역시, 일상 언어 철학은 자연 언어의 복잡함 그대로 화자의 실제 언어 사용에 집중하는 반면 이상 언어 철학은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화자로부터 자연 언어를 분리하여 그것에 단순한 형식 언어의 논리적 구조를 투사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는 구시대적인 렌즈에 의해 왜곡되어 있었다. 스트로슨이 결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새로운 흐름은 일상 언어 철학과 이상 언어 철학이라는 두 기획을 경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여겼고 따라서 자연 언어를 상대적으로 단순한 형식적이고 진리조건적인 의미론으로 해석하는 것이 화자가 실제로 언어를 사용할 때의 복잡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새로운 흐름에 대한 스트로슨의 비판이 요점을 벗어난 것이라고 사람들은 널리 여겼고, 이는 그를 옛날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데 일조를 했다.


뭔가.. 초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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