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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미국의목가>


1.

한 인간의 내면이 무너지는 과정을 어마무시한 필력을 가지고 무지막지하게 파헤치면서 써내려간 

하지만 미완성처럼 보이는 소설이다. 


2.

책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이하 어쩔 수 없이 스포가 포함된다)


1부는 주인공의 동생 친구인 작가의 눈으로 본, 

학창시절에는 그 지역의 스타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던 주인공이

다 늙어서 왠지 껍데기만 남은 듯한, 그렇기 때문에 그 껍데기를 반짝거리게 보이도록 노력한 듯한

그런 인간이 되었는지를 궁금해 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2부에서는 

주인공의 인생이 파탄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게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고 난 뒤 5년동안의 지옥같은 삶

그리고 지옥같은 5년 뒤에 이제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가질 때 쯤

그를 나락으로 밀어버린 그 장본인을 재회한 후 자신이 가진 희망이 허상이었음을 절절히 깨달으면서

한단계 더 추락하는 과정을


3부에서는

그렇게 나락의 나락으로 추락한 주인공이 참석한

미리 예정되어 있던 저녁식사자리에서 나락의 나락 밑에 또다른 나락이, 끊임없는 나락이 계속해서 입을 벌리고 있음을

우리의 주인공이 과연 어디까지 추락해야만 이 소설이 끝나는 것인지

그리고 주인공은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추락한 것이 아니라, 아니 시작은 떠밀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저녁식사 자리에서의 한없는 추락은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진저리치게 끝도 없이 펼쳐진다. 


3.

그러니까, 결국 아무리 선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해봤자

원래부터 그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에게 무정한 것이고, 한번도 무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삶이 가지는

그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의 관점에선 잔인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폭력성.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삶의 잔인한 폭력성이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닐까라는 가능한 의문

뭐 이런 이야기다. 


동시에 제목에서도 노골적으로, 그리고 작중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여러번 반복되듯이

미국이라는 나라, 혹은 정신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4. 

1부와 2,3부가 잘 안 붙는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주인공을 소개하는 1부 역시 굉장히 근사했기에 별 불만은 없다. 


여러번 클라이막스가 오지만, 결국 가장 큰 클라이막스는 2부의 끝부분인데,

그걸 고려하면 3부가 너무 길게 쓰여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길게 쓸 수 밖에 없는 당위 역시 느껴진다. 


중간에서 뚝 끊긴 듯한 결말 역시 아쉽지만,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구성방식이나, 서술방식, 그리고 주제의식에서 이 작품보다 30년 앞서서 쓰여졌던

조이스캐롤오츠의 <그들>과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느꼈다.


5.

흥미로운 점은 유럽놈들은 2차세계대전으로 자신들이 시궁창에 쳐밖힌 존재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면,

미쿸놈들에게 2차세계대전은 불황을 극복한, 승리의 역사이자 호황기/전성기였고,

케네디암살-베트남전쟁이 자신들의 추락을 인지한 시점이었구나라는 구대륙과 신대륙의 시차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전 이후의 미국을 다룬 조이스 캐롤 오츠의 <카시지>를 언젠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점은, 이 정도 분량과 밀도로 계속 밀고 나갔다면, 

그래서 고전적인 의미의 소설에서 말하는 진정한 결말까지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이 소설은 <레미제라블>을 능가하는 분량이 되어버렸겠지만,

내가 궁금해서 아쉬운 것은,

스위드가 그 진창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와, 그리고 스위드와 대비되는 삶을 살았던 제리의 일생인데,

그게 없어서 아쉽다.

(혹시, 로스의 다른 책에 쓰여져 있나?)


암튼 명불허전, 오랜만에 읽은 굉장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