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인에게 '종교'는 사적이고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정신활동으로 취급됨.
그런데 고대인에겐 그렇지 않았음. '종교'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폴리스'적 활동이었음. 그래서 고대 종교는 '제사'를 중요시한 거임.
성경 역시도 고대 문학이기에, 종교에 대한 공동체적 맥락에서 쓰인 책임.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의 주제는
1. 하느님
2. 하느님의 백성(구약의 이스라엘. 그리고 이스라엘을 뿌리로 한 신약의 교회)
이 두 가지에 온전히 맞춰져있음.
분명히 성경은 개인의 인격에도 관심을 가지지만, 그 관심은 온전히 이스라엘(혹은 이스라엘을 뿌리로 한 교회)이라는 맥락과 불가분으로 엮여있음.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때는 '신과 인간 개인'이 아니라, '신과 백성'이라는 틀에서 읽어야 함. '공동체에서 분리되었다는 의미에서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해석이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는 있지만, 그건 텍스트의 본래 맥락에서 벗어난 거임.
교리에 동의해야할지 여부는 독갤의 갤주제를 벗어나지만, 성경을 읽을 때 텍스트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독갤의 주제임.
그리고 텍스트의 주제는 분명함. 예수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이고, 교회는 이스라엘을 뿌리로 했고, 개인의 구원은 이 이스라엘(혹은 교회)에 어떤 식으로든 결합될 때만 가능함.
성경의 텍스트는, 예수가 개인의 내면을 시민윤리적으로 계몽하려고 육화했다고 말하지 않음. 바오로가 로마서 2장 28-2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내면의 시민윤리적 각성이 아니라, 진정한 할례를 통해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결합하라는 의도임:
"겉모양을 갖추었다고 유다인이 아니고, 살갗에 겉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으로 유다인인 사람이 참유다인이고,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할례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 칭찬을 받습니다."(로마 2,28-29)
자세히 언급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내가 하려는 말은 간단함.
1. 교리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성경 택스트 그 자체는 구약이든 신약이든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다. 텍스트는 개인의 인격이 신과 맺는 관계를 전제하지만, 이 관계는 결코 공동체와 무관하지 않다.
2. 신구약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적 열쇠는, 신과 백성이 맺는 관계이다.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다 적용되는거임?
개신교는 케바케이긴 한데, 퀘이커라면 모를까 칼뱅주의나 루터교, 성공회 등에선 동의함.
굳
이거 이슬람교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꾸란은 모르겠음
오 - dc App
바울의 교회에 걸맞는 독서법이네.
나같으면 특정 사상의 방향으로 공공연하게 제시된 독서방식을 '독서법'이라는 이름 붙여서 커뮤에 올리는게 양심에 찔릴듯
1. 모든 주석학자가 동의하는 단일한 해석법은 없음. 나도 그런 의도로 글을 쓴 건 아님. 2. 실제로 100년 전 쯤 Adolf von Harnack은 신약이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가치를 중시한다고 봤음. 3. 그러나 소속 교단의 차이를 넘어서, 20세기 후반과 21세기의 주석학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예수의 관심은 온통 이스라엘에 방향지어져 있으며 예수는 온전히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폭넓은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음. 이는 일부 진보 주석학자의 일탈을 넘어, 기존 교단들에 이미 자리 잡은 공감대임. 동시에, 2-3세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교 종말론을 교회론적 맥락에서 독해했다는 건 역사비평적으로 지지됨. 4. 따라서, 만장일치된 주석학적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2차 대전 이후 주석학의 공감대와 경향에 합치되는 입장을 서술할 때 난 '독서법'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음.
1. 그런 의도로 쓴게 아니면 글 제목이 어느정도 부당하다는 의미 아닐까? "(교리 이야기 맞음) 간단히 설명하는 공동체주의적 성경 독서법"이라는 제목이었으면 나도 조용히 지나갔을듯. 2. 지금도 자유주의 신학이나 윤리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독서하는 사람들이 많음. 100년전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화된 지금의 측면에선 이게 다수지.
3. 주석학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게 일상적인 성경 독해의 방향성을 잡을 정도의 권위가 있다고 볼 근거는 없음. 1번 답만 충실하게 지켜도 이 글의 부당성이 해소될거같은데 4.입장을 서술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면서 가치중립적인 늬앙스를 풍기는 '방법'이라는 단어를 혼용하는건 아무리봐도 부당한듯.
크 역시 뇌피셜이 진리지 다음부턴 시덥잖은 팩트로 깝치지 말자^^
교회밖에는 구원이없다충 어서오고
^뇌피셜^
ㅋㅋ 발작 개웃기네 ㅋㅋㅋㅋ
발작은 너가 하는거지ㅎㅎ 1은 말장난 2는 니 뇌피셜 34는 내 맘에 안드니 넌 틀렸어요~ ^^
그....서로 감정 상할 말 자제하길.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적겠음: 개인주의적 독서법이 누군가에겐 의미가 있고, 대중적으로는 인기가 있다는 걸 나도 부정하지 않음. 다만 그것이 택스트 그 자체에서 지지되는 해석법이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려움. 이건 무의미한 해석법이란 말이 아님. 텍스트는 텍스트 그 자체를 넘어서, 독자가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서도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음.
제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짧지만 좋은 글이네요.
꿀팁이네요...세계문학전집 읽으러 가야지
혹시... 예수의 비유 설명에 대해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지만 알찬 책 하나 추천해줄 수 있나요
품절됏다는 문제는 있는데,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의 《예수 마음 코칭 - 평신도를 위한 역사 비평학》(원제 Jesus von Nazaret - Was er wollte, wer er war)가 가장 추천할만함.
감사합니다!
중고책 구하기 어려우면 같은 저자의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https://m.bundobook.co.kr/goods/view?no=1878
랑
"산상설교는
누구에게?"
https://m.bundobook.co.kr/goods/view?no=1916
를
추천함.
가톨릭 사제가 쓴 책이지만 개신교 신자에게도 좋은 책임. 개신교 전도사님이 남긴 리뷰글 참고
https://www.agapao-zoe.com/wp-content/uploads/2019/12/%EC%A3%BC%EB%B3%B42019.12.15..pdf
굿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