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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자체라던가, 존재라던가, 자신의 의도를 밝히는 문장 없이 서술만하는 경우에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믿음을 비어있는 형식 속에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빈지노의 <break>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벽 뒤를 바라보려고 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이게 어떻게보면 위에서 설명한 개념적 장치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2. 레닌-마르크스주의나 근본주의 종교의 스토리는 위와같은 장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왔다. 내용없는 계율을 통해 과두정적이고 권위적인 체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그들의 작용이 낱낱히 드러나버렸다. 이론을 사회적 실천으로 top-down하는 방식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위계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말이다.

3. 로티는 이러한 맥락에서 반표상주의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표상이라는건 개인의 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표상주의를 공격한다는건 개인의 사유를 제약하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않기 때문이다. 로티 말고도 데닛같은 자연주의자들이나 로티식 비트겐슈타인 해석에 감화된 학자들이 마음, 표상, 의지에 대한 축소주의적 이론을 선호한다.

4. 로티는 책에서 우리가 만든 사회적 개념들은 모두 우연성의 산물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객관성을 연대성으로 대체하길 요구한다. 전에는 알쏭달쏭했는데, 이쯤되면 로티의 의도가 적나라해보인다. 로티는 진리, 도덕적 의무같은 과거의 합리주의적 유산들이 우리가 역사적이고 우연한 존재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며, 오히려 공감과 연대가 새로운 공적 가치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비판이 될 수 있나싶다. 사회적 개념들이 구성되었다고 한들, 우리가 그러한 개념들을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로티가 제시하는 재기술이다.

5. 적어도 로티를 탐미주의자처럼 자유롭고 나이브한 인상으로 해석하려는게 아니라면, 로티와 자신의 입장이 친근하다거나 동류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파시스트의 길을 걷는거라고 봐야할 것 같다. (데리다가 원하든 원하지않았든) 문화적 좌파들이 데리다에게서 항구적인 투쟁의 메세지를 발굴하듯이, 로티는 철학에 파시스트들을 위한 거대한 카타콤을 만들어놓았다. 이게 너무나 교묘하기 때문에, 이걸 거둬내는 동안 로티의 철학 속에서 자유주의는 톨스토이가 문학에서 점점 사라지듯 철학 속에서 소멸할 것처럼 보인다.

6. 로티의 철학적 계보가 너무나 교묘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그 맥락 안에서 로티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로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르상티망과 다윈주의의 혼종이라는 점이다. 나는 좀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싶다. 이 책의 이름은 수정되어야 한다.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투쟁>으로,

7. 우리가 향유하는 자유에는 각자가 욕망을 절제하며 인내한 결과들의 총체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의 인내심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로티가 만약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긍정한다면, 로티는 사람들의 책임감과 인내심을 격려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일상 어휘들이 학계의 걱정과는 달리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 더 힘을 쏟았어야 했다. 일상을 옹호하려는 여러 철학자들처럼 말이다.

8. 공동체의 연대에서, 과두정적인 지휘는 불가피하다. 역사적으로 사상가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워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나는 로티가 언어의 공적 사용(언어의 선제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개인의 사유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하려고 하는 시도를 보면서 개인의 표현을 제약하는 빈의 왕정이나 독재국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건 크게 비약이 아닌 것 같다. 로티가 자유주의자면 예수는 무신론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