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파우스트를 읽었는데 엔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음
그 뒤로 몇 년이 흘러서 뭔 내용이었는지 거의 기억 안 나지만 엔딩 장면은 여전히 불가해야
그래서 그런데
마지막에 왜 천사가 나타나서 파우스트를 납치한거야???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한거야? 왜? 그토록 열심히 유혹하고 현혹하고 마법에 젊음에 모든 걸 다 줬는데 어째서 천사가 나타나서 뒷통수 치는거야?
파우스트는 악마랑 거래했는데 어째서 천국에 간 거야? 파우스트가 나쁜 짓이란 짓은 전부 했는데 왜 면죄 받는거야?
그 뒤로 몇 년이 흘러서 뭔 내용이었는지 거의 기억 안 나지만 엔딩 장면은 여전히 불가해야
그래서 그런데
마지막에 왜 천사가 나타나서 파우스트를 납치한거야???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한거야? 왜? 그토록 열심히 유혹하고 현혹하고 마법에 젊음에 모든 걸 다 줬는데 어째서 천사가 나타나서 뒷통수 치는거야?
파우스트는 악마랑 거래했는데 어째서 천국에 간 거야? 파우스트가 나쁜 짓이란 짓은 전부 했는데 왜 면죄 받는거야?
최근에 너진똑 파우스트 고퀄로 올라왔는데 한번 봐봐
난 힙스터라 그런거 안봄 - dc App
그냥 알랴주삼 - dc App
내가 언젠가 과업을 만족스럽게 다 이루면 시발섹스를 외치겠다라고 한거지 지금 과업이 만족스러워 시발섹스를 외친게 아니라서
애초에 파우스트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으로 읽으면 이해를 못한다. 파우스트의 결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테의 이상을 알아야함. 괴테는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추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종교적인 견해나 보편적인 견해에 의거하지 않음.
괴테가 주인공 파우스트를 구원한 것은, 주인공 그 자체를 진리로 보기 때문이 아니라. <파우스트라는 인물의 속성>과 작품 <파우스트>의 <변증법적 사고 방식 그 자체>를 진리로 추대하기 때문이다.
1823년 11월 4일 괴테는 역사적인 것과 생산적인 것을 결부시키면서 뮐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되돌아 그리워할 과거사는 아무것도 없다. 과거의 확장된 요소들에서 형성되는 영원히 새로운 것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리고 진정한 그리움이란 언제나 생산적이어야만 하며, 하나의 보다 더 휼륭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만 한다.”
물론 그것을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말에 어폐가 있음. 다만 괴테는 그것이 진리이기를 바라기에 파우스트를 구원한거다
마지막 구절이 이 부분을 명시하고 있다. *모든 무상(無常)한 것은/ 비유에 지나지 않는 것,/ 도달할 수 없는 것,/ 여기서 실현되고,/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 여기서 이루어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가도다.
쉽게 말하면 영원히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파우스트의 인간상을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변 것들이 희생되고, 그 희생을 보고 고뇌하고, 그렇기에 멈춰서기도 하고, 다시 갈망하기도 하는 변증법적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냥 작품 전체가 이런식의 변증법적 관계로 서로간에 촘촘히 연결되어있음.
그러한 변증법적 관계의 흐름을 거듭하여 종국에, 도달한 결과가 진리이기를 바라는 괴테의 이상의 표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