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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의 글 중에서 이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추천받아 읽어본 책이다. 읽을 때까지 우여곡절이 좀 있었는데, 한참 전에 절판된 책이라 당연히 학교 도서관에는 있을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았던 게 하나고, 중고로 사면 되겠지 하고 찾아봤다가 예전에 본 중고 판매 게시글이 이미 내려갔던 게 둘이고, 그렇게 지금 와서 보니 유일한 중고 판매처 가격이 두 배가 되어서 좀 기분이 나빴다가, 받고 보니 번역 품질이 아무래도 조악한 것까지. (오탈자는 양반이고, 쌍따옴표는 마치 혼령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는데다, 챕터 별로 번역자가 다르기라도 한 건지 한 챕터에는 통째로 다카키가 다키키로 등장한다.)
그래도 소설 자체는 좋았다. 사실, <만엔 원년의 풋볼>보다 작품성 자체는 떨어질 것 같기는 하다. <만엔>에서 민중 운동에 대해 비판과 연민을 동시에 보여주며 독자에게 갈등을 유도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조금 더 민중 운동에 몰입시키려는 감이 있다. 더욱이, 약간은 황당무계한 이야기와 소재들을 통해서 <만엔>과는 달리 조금 더 판타지 같은 느낌으로 나아간다. <만엔>에서의 민중 운동은 약간은 정치적이고 과거와 이어져 있는 뿌리를 갖고 있었는데, <홍수>의 그것은 뿌리 없는 반항, 사회 자체에 대한 염증에 불과하니 말이다. 자유항해단이라는 이름을 달고, 동경대지진에서 약한 조선인들을 린치하며 책임을 떠넘긴 것을 예시로 들며 자기들은 다음 재해에서 이 탄압받는 약자가 되고 싶지 않다며, 배를 타고 멀리 떠나겠다는 것이 유일한 주장이다.
화자 이사나 역시 약간 괴상한 인물로, 고래와 나무의 대변자라고 스스로의 이름까지 개명한 뒤 정신지체아 아들을 데리고 방공호에 피신한 채로 살며, 인류가 기어이 자신의 폭력으로 멸망하고 나면 생존한 고래와 나무들에게 인류의 폭력을 마지막으로 알리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그 생각은 자유항해단에 휘말려 그 생각에 동조하게 된 후 더욱 발전하여, 마지막에는 기어이 이 폭력을 알릴 유일한 방법은 그 고래와 나무들에게 마지막 인간으로서 폭력을 보여줌으로서 인간의 폭력을 분명한 것으로 그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때, 화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미 실제와는 다소 괴리되어 있다. 자유항해단이 그렇듯.
판타지적. 판타지적이라고 하여 생각이 드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홍수>는 아사마 산장 사건을 보다 더 낭만적으로 탈바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목적 없이 부유하며 자신들의 운동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다가, 말의 전문가 이사나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응집력을 갖추고, 오그라드는 남자에 의해 외부로부터 철저히 단절되었다가, 기어이 어떻게든 사살해야 할 폭력집단으로 인식되는 과정 속에서. 그러나 사실 세카이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그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느껴지는 고립된 자기 속의 세계가 있다. 아마도 꽤나 낭만적인 방식으로 제시되면서.
어쩌면 여기에 내가 일본 문화에서 느끼는 매력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그 흔적은 다른 모든 문화에서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아주 약간 드문드문 남아 있는 화석들을 통해서 오직 해석자만이 과다하게 연결고리를 부여하는 무의미한 길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를 세기말적 정서라고도 하겠고, 실제로 어느 정도 통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감성이 있다. 간만에 물 안에서 눈을 감고 그 생각을 해보고 싶다. 저 위 뚜껑이 열리고 홍수로 범람한 강물이 기어이 쏟아져내리고 있다는 생각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나 <익사> 같은 후기작으로 갈수록 민중운동에 대한 오에의 향수가 점점 강해지는 거 같긴 함
익사나 읽어볼까...
개노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