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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을 읽고 꼭 읽어보고 싶었던 비평서다. 원래는 피에르 바야르의 소위 '추리비평'을 활용했다는 René Alladaye의 <The Darker Shades of Pale Fire: An Investigation into a Literary Mystery>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이쪽은 구할 길이 없는 책인 것 같아서 포기한 상태다. (아마존에서도 십만원 상당의 중고 밖에 없는 것 같던데 대체?) 그래도 이 책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서 괜찮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나보코프 전기를 쓰기도 할 만큼 나보코프에 통달한 사람이다보니, 자연스레 <창백한>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을 종합하는 데에도 익숙한 듯해서 말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 책은 책을 세 번 정도 읽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첫 읽기는 '정'으로 한 번 읽는 독자가 (사실, 좀 눈치 빠르고 주의력 높은 독자가) 포착할 수 있는 사실들을 종합한다. <창백한>의 독자라면 당연히 다 알 법한 사실들, 이를테면 킨보트가 얼마나 괴상하게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며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그의 무신경함이나, 주석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킨보트가 의도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라든가, 킨보트가 주석 전체에서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는 거짓말의 범위나, 그 거짓말들이 어떤 것들을 재료로 만들어진 것인지 따위의 사실들. 사소한 부분이지만, <창백한> 번역서의 주석에는 나와 있지 않던, 괴테의 시 <마왕>과 셰이드의 시와 킨보트의 주석 사이의 괴상한 조응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나 처음으로 <창백한>을 읽은 독자가 마지막에 맞이할 1000번째 줄의 주석 마지막 부분에서 이 독해는 벽을 만난다. <롤리타>를 읽듯이 그저 킨보트의 기만술 하나에만 집중하기에는, 정작 킨보트라는 이 인물이 이 모든 것들이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부 암시하듯이 모든 걸 놓아버리는 탓이다. 여태까지 읽은 것들을 토대로 <창백한>을 다시 읽으며 접근 방식이나 초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렇게 시작되는 두 번째 읽기, '반'은 눈에 띄는 킨보트의 기만 외에도, 셰이드의 시의 부분부분이나 주석에서 대놓고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을 주목한다. 흥미롭게도, 킨보트의 어거지로 젬블라 모티브를 끼워맞추려는 주석의 힘겨운 견강부회와는 별개로, 실제로 시와 주석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들이 존재한다. 스타일에서도, 소재에서도.


두 번째 읽기는 바로 이 부분에서 중심적인 논쟁을 들고 온다. <창백한>의 실제 저자는 과연 누구인가? 정말로 셰이드가 시를 쓰고 킨보트가 주석을 썼다면, 어째서 이 두 독립적인 텍스트 사이에는 이런 유사성이 존재하는가? 누군가는 킨보트가 시 역시 썼거나, 주석을 그에 맞춰서 수정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킨보트는 셰이드의 시에서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그의 화목한 가정 생활과 딸의 비극적 죽음 등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광적인 인물이고, 그런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형식 없이 스스로 젬블라를 위한 시를 썼을 것이며, 주석을 그에 맞춰서 수정했다기에는 킨보트의 젬블라 이야기 자체에서 이미 시와의 일치가 상당히 엿보여 무리가 있다. 반대로 셰이드가 시 이외의 것들까지도 직접 썼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킨보트의 서술들은 셰이드가 그저 문학적 장치일 뿐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하게 셰이드를 추앙하며 다른 대학 동료들을 까내리고, 셰이드는 딸의 죽음에 대한 자전적이고 슬픈 시를 그저 광적인 주석을 위한 재료로 써먹을 만한 성격은 아닌 듯해 보인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창백한>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세 번째 읽기, '합'이 필요하다. 보이드는 여기서 <창백한>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유령에 대한 암시,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사후 세상에 대한 셰이드의 시 및 킨보트의 주석에 집중한다. 두 번째 읽기에서 어느 정도 내용을 유추한 유령의 메시지에서 또 다른 비밀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두 번째 읽기에서 보여주는 유령의 메시지에 대한 일반적 해석보다 이쪽이 훨씬 더 눈에 띄고 설득력 있다.) 메시지에서 반복되는 atalanta라는 말, 셰이드의 죽음을 반겨주는 듯한 Vanessa atalanta 나비, 그리고 여러 소재들을 통해 바라보건대, <창백한>에는 유령들이 있다. 그것도 꽤나 많이. (이미 유령의 존재 자체는 두 번째 읽기에서 분명시되기는 했다. 나보코프의 다른 단편소설에서 유령들의 비슷한 상호작용이 이미 등장하기도 하였고.) 셰이드의 딸의 유령, 셰이드의 유령 등. 이들이 직접적으로 <창백한>의 서술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창백한>이 담고 있는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이다.


<창백한>을 읽은지는 이제 몇 년이 되었지만, 덕분에 다시 한 번 <창백한>을 다시 읽고, 몇 번이고 인용구들을 재차 펼쳐가며 이 흥미로운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나보코프의 다른 문제작, <아다 혹은 열정>은 <창백한>보다도 해석의 정설이 잘 나오지 않은 모양인데, 기회가 된다면 이 역시 읽어보고 싶다.


P. S. 아무래도 영어가 짧다보니 원서 감상문은 어지간하면 자중하는 편이지만 (오독의 가능성이 워낙 높아서) 비평서기도 하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