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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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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와 관련된 이야기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느끼는 점은, 자연계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약육강식의 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유전자들의 역할극“같다는 것이다. 토끼보다 호랑이가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종간의 현상으로서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지만, 그렇다고 토끼가 멸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토끼가 멸종하면 (두 종밖에 없다면 - 그럴 일은 없지만) 먹이가 부족한 호랑이는 토끼를 따라 멸종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어떤 기생충은 포식자의 몸 안에 알을 낳기 위해 일부러 잡아먹히길 유도하기까지 한다. 한정된 생태계 자원에서 역할을 서로 나눠가지고 개체단위가 아닌 종 단위로서 각자 잘 살아남고 있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나뉘어졌을지 몰라도 종의 관점에선 사실 모두가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에너지 총생산에서 파이를 서로 분배하고 사슴과 토끼는 초식동물의 역할을, 삵과 호랑이는 육식동물의 역할을 각자 분담한 것만 같다. 생태계가 유전자들의 거대한 역할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강한(우월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진화론에서 이미 틀린 말이다. 초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육식동물보다 강한 하마나 코끼리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신 ”바뀐 환경에 가장 적합한 종이 살아남는다.“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강자생존이 아니라, 적자생존이다. 지구온난화가 일어나 지구가 뜨거워지면, 우연히 더위에 내성을 가지고 있던 종들이 살아남는다. 반대로 빙하기가 도래해서 지구가 차가워지면, 이번엔 우연히 추위에 내성을 가지고 있던 종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현세대의 종들이 과거에 멸종한 종들보다 더 우월하거나 강력해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단위에서 자연계의 상황과 각자가 가진 특질이 우연하게 들어맞아 한자리를 차지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극이 바뀔 때마다 어느 역할(살인자나 피해자)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잠깐 맡은 것 뿐이지, 살인자 역할을 한 배우가 피해자 역할을 한 배우보다 연기력이 우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러한 원칙은 종과 종간의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 한 종 안에서 유전자와 유전자간의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적혈구 형성 인자 중에는 ”겸상 적혈구 인자“라는 것이 있다. 이 인자를 가진 사람은 우리가 흔히 아는 원반 형태의 적혈구를 잘 만들어내지 못하고, 찢어진 것만 같은 낫모양 적혈구를 만들어낸다. 당연히 이런 비정상 적혈구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적혈구의 산소운반능력이 떨어지고 일상활동에서 쉽게 피로해한다. 겸상 적혈구 빈혈 환자는 뇌졸중이나 고관절 괴사, 다리의 궤양의 발생 빈도도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언뜻 생각해보면 이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도태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당연한 이치인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그런 묘한 자연선택의 굴레바퀴를 우생학을 통해 조금 더 빨리 굴린다면 더 멋진 인류가 탄생할 것만 같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동물은 모기이다. 모기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혈액을 통해 옮기는 말라리아 원충의 매개체 역할을 해준다. 말라리아 원충은 적혈구를 감염시키면서 생활사를 진행하는데, ”우연히도“ 찢어진 모양을 가진 겸상적혈구환자는 이에 대해 저항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겸상적혈구환자가 생존률이 일반인보다 높아져 버린다. 어떤 관점에서 열등했던 특징이, 어떤 상황에서는 우월한 특징으로서 작용하고, 이 모든 것은 모두 우연성에 달려있을 뿐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시간 단위에서, 인류가 가진 특징이 찰나의 시간 동안 ”우연히“ 유리한 형질로서 기능했을 뿐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만은 사라지고, 자연계를 이루는 수많은 종 중 하나로서 겸손하게 된다. 동시에 우리에게 파이를 내어줬을 다른 종들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된다.

사회변화에서도 같은 원칙이 또 한번 적용된다. 이제는 설명하기 지루할 지경이다.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영원불멸하지 않다. 일 개체의 수명보다는 존속기간이 길지만 어쨌든 매우 가변적이다. 스파르타에서 ”지능이 높은 사람“은 큰 의미가 없었다. 절벽에서 떨어뜨렸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신체적으로 강력한 사람“만 유의미 했다. 나치가 집권할 당시 독일에서 ”유대인“은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었다. ”순수한 아리아인“만 유의미 했다. 사회가 변하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매번 달라졌고, 우연히 들어맞는 특징을 가진 사람이 사회적 명망과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결국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강력한(적합한) 사회적 공동체가 되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대멸종에 대응하는 유전적 다양성과 같이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다양성을 유지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요즘의 우리는 잘 해내고 있는걸까? 바야흐로 능력주의가 창궐하는 시대이다. 유명대학이나 사회적 부를 이뤄낸 사람들은 본인들의 성공신화를 자랑하고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일궈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 사회 거의 모두가 익숙해하고 동의하는 명제이다. 온갖 매스컴은 성공한 사람이 가진 ”개인적 지능과 노력“에 집중하고 이를 조망한다. 스카이 합격생이 어떻게 공부했는지에 대해 보도하고, 수많은 기업가의 성공신화가 책으로 나온다. 능력주의는 사회와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부작용도 있다. 성공한 개인에게 성공할만한 했던 ”능력과 자격“을 부여하면 할수록, 패배한 개인에게는 당신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캐물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런 추궁들은 보통 ”너는 실패할 만 하다.“는 낙인으로 귀결되곤 한다. 승리한 사람이 승리할만 하다면, 패배한 사람은 패배할 만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소득자와 고학력자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태생 자체가 저임금노동자나 저학력자보다 우월하고 대단해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겸상적혈구인자의 예처럼 학1벌주의 사회가 도래했을 때 ”우연히“ 공부를 잘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이고, 시장경제가 도래했을 때 ”우연히“ 사업적 사고가 원활한 두뇌를 갖고 태어났을 뿐이다. 이는 재능의 영역뿐만 아니라 배경의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은 학생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각종 입시요강과 고액과외 등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학생이 똑같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배경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에 미친 사회에서 그런 출발선 공정의 문제에는 아무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능력주의는 성공한 사람들이 받은 도움, 지지적 환경이나 발판에 대해서는 망각하게 만들고, 능력주의적 오만과 자만으로 이어지게 한다. ”나는 성공할 만한 사람이야, 너는 실패할 만한 사람이고,“라고 말하기 쉬워진다. 곧 혐오표현으로 나타난다. 부와 지능으로 줄세우는 사회 아래 저소득층과 실패자에게 패배의 당위를 강요하는 ”엘사(LH사는 거지), 국평오(국민 평균은 5등급)” 등의 혐오표현이 스멀스멀 생성된다.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근래의 상황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급격한 산업화로 대한민국은 OECD에 입성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한강의 기적은 만들어냈을지는 몰라도, 철학의 확립은 해내지 못했다. 가성비와 효용성으로 줄세우기만 한 사회에서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후순위로 밀려나기만 했다.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보통 우스운 일이 되어버렸다. 공동체 안에서 호랑이와 토끼의 역할을 어떻게 분배하고 어떻게 배려해야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사회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전무한 시대가 되어버렸고, 그 자리엔 상대를 ~충을 붙여 무시하는 혐오만 남았다.


언제 역할극이 뒤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의 호랑이가 영원히 호랑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당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시대적으로 “좋게 평가되는 우리의 특성”덕에 잠깐 호랑이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또한 우리가 약자로 배정해버린 특성들이 몇년 후 사회의 주요 가치 중 하나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를 고려하지 못하고 능력주의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소거하고 소거하고 소거하고 나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을 때 사회적 다양성은 이미 우리 손에 없을 것이다. 호랑이 역할로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소거되고 우리 사회엔 토끼 외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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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 이런 책 안읽어본 빡1대가리라 테크노크라시나 코스모폴리탄 같은 기본적 정의를 몰라서 존나 애먹음...

트럼프의 당선이나 브렉시트를 왜 포퓰리즘의 분노라고 말하는지도 첨엔 전혀 이해를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