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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이란 아무 것도 없소. 미술은 착각을 피하게 해 주지요.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가장 나쁜 착각을 말입니다.
감각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양자는 하나이고, 모두 똑같이 좋은 것이야. 자네가 어떤 여자를 포옹하든, 시 한 편을 쓰든, 그건 똑같은 것이란 말일세. 여기에 중요한 것, 즉 사랑, 불타오름, 사로잡힘 등만 있다면 자네가 아토스 산 위의 수도승이건 파리의 바람둥이건 마찬가지란 말일세.
우리는 한 가지 착각을 하곤 합니다. 흔히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아무 편견 없이 좋은 것으로 숭배하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영원히 나쁜 것으로 전락시키는 편견입니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어떤 현상이나 또는 속성에 대해 이미지 또는 일면만을 보고 평가하는 오류를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고선 너무나 순진무구하게도 태연한 표정을 하곤 살아간단 말입니다.
일례로 인간을 예로 들어볼게요. 인간의 특성은 결코 어느 한 극단에 치우쳐 있지 않습니다. 한 인간은 어떤 상황에선 어떤 특성이 발휘되면서도, 또 다른 상황에선 그 특성과 양극에 있어 보이는 특성이 발휘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MBTI를 예로 들어보자면, 그 중 F와 T로 F는 공감을 T는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F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판적으로 사건을 검토하는 사람도 있고 T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드라마를 보며 연민에 눈물을 펑펑 쏟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양극단의 성향을 정해놓고, 가로선을 긋고, 나는 이쪽에 속하는 감정만 가지고 있어 나는 저쪽에 속하는 감정만 가지고 있어 그렇게 완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채로운 모든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으로 인하여 죽고 소멸하기도, 새로 탄생하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놓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한 사건에 대한 그의 태도, 즉 일면만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흉포하기 그지없던 사람이 오늘에는 세상 인자할 수도 있고, 어제는 세상 인자하기 그지없던 사람이 오늘은 어떤 일의 발생으로 감정의 트리거가 촉발되어 흉폭해질 수도 있지요. 칼로 사과를 잘라 그 단면을 관찰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의 단면은 쉽게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불예측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인간을 재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파악하기도 어렵게 만드는 요소기도 합니다.
당신에겐 몰락으로 보이는 것이 저에겐 탄생으로 보입니다. 둘 다 착각입니다.
작품에서 주로 다뤄지는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죽음이란 것이 반드시 이 세계와의 연결고리가 단절되는 것만을 의미할까요? 생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요?
작가 헤르만 헤세는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조국으로부터 배신자로 매도당하기도 하고 개인사가 겹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괴로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흔히 우울증을 겪고 융의 연구 덕택에 상태가 크게 호전되어 싯다르타로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싯다르타 이전에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이란 작품으로 심연 속에서 위대한 도취를 통해 창작욕을 불태운 끝에 다시 세상 밖에 나오게 됩니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면 죽음, 절망, 심연 등 위태로운 삶의 모습들이 연상됩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는 이런 삶의 위태로운 절망이나 고난이 필연적으로 발생해야 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것을 변용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탄생을 위해선 죽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기존에 그려놓은 그림의 형태나 써놓은 글귀들을 변용하여 새로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은 도저히 기존의 것을 유지한 채로 앞으로 진행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그린 것, 작성한 것이 아깝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별의 수순을 밟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별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몰락뿐입니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심연을 건너고 있는데, 말들이 겁을 먹은 것입니다. 우리는 몰락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커다란 전환점이 우리에게 닥쳐왔습니다. 위대한 왕, 예술에서의 위대한 변화, 서구 국가들의 위대한 파멸 등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유럽에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좋고 고유한 것은 모두 죽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이성은 망상으로 변해 버렸고, 우리의 돈은 종잇조각일 뿐이며, 우리의 기계는 쏘고 폭발시키기만 할 수 있을 뿐이며, 우리의 예술은 자살입니다. 우리는 몰락해 갑니다, 친구들이여. 우리는 그렇게 예정되어 있습니다. 정성조가 연주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류에게 있어 대단히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죽음이라는 문제에 맞서 사춘기가 시작되고 그 절망의 시기 동안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그 절망과 심연의 시기 동안 저는 명랑함과 웃음을 잃어버렸고, 망각의 도움으로 즐거움을 되찾으려는 찰나, 죽음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져 무섭게 짓누르곤 저를 삼켜버리곤 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사실 어떤 전략으로 죽음에 맞섰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처음이 주는 충격을 계속 맞대고 있다보니 둔감해진 것일 수도 있고 그저 바쁘게 친구들과 뛰어놀다보니 자연스레 잊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회피했던 것 같아요. 다만, 나이가 들어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때로는 삶에의 도취, 아모르 파티에 환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괴로움을 비우는 붓다의 가르침에 끄덕이며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점차 떨치게 된 것 같기는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반 일리치의 위대한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쫓기던 시기의 막바지에 이른 그는 사용하지 않는 빈 부엌에 완성된 그림을 가져다 놓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는 이 그림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베로날을 먹고 하루 밤낮 동안 꼬박 잠에 빠졌다. 그런 다음에야 그는 세수를 하고, 면도도 하고, 새 속옷가지와 옷을 걸치고 시내로 가서 지나에게 선물할 과일과 담배를 샀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 자체에서 선현들의 지혜를 배울 기회가,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클링조어가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불멸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모든 죽음의 우수와 절망, 심연의 굴에서 다시 햇빛이 비추는 세계로 기어나와 애인에게 선물을 사고 일상생활을 영위한 것처럼 언제 그런 과거 있었냐는 듯 평온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죽음이란 암흑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평온이겠죠.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무서워하는 모든 것들도 우리가 어떤 자세로 마주하냐에 따라 그것들은 영원히 우리에게 해악을 끼치는 해로운 것들이 아니라 우리를 새로 탄생하게 하고, 변화하게 하고, 심지어 소멸하게도 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주로 죽음에 맞서는 불멸의 예술혼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양 극단의 위치에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에게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선과 악, 이타심과 이기심, 순응과 반항, 의리와 배신 같은 것들이 그 예입니다. 무조건 전자는 좋은 것이고 후자는 나쁜 것인가요? 물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매도하고 배척하기 보단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살펴봄으로써 스스로 발전의 양분으로 삼고 내 안에 있는 특성들의 조화를 꾀하고, 나와 세계 사이에서 조화를 꾀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 순간의 판단이 아닌 꽤 긴 숙고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 과정은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회피하고 멀리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에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일이 절대 우리의 삶을 배신하진 않을 것이며 도리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귀중한 보석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생각이 헤세가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통해 저에게 전달해준 위대한 유산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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