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무명작가로서 아무도 관심안가져주는 잉여인간 조지 오웰. 그에게 이모가 잡지 한권의 구독권을 넘겨준다. 대충 좌파 냄새 풀풀 풍기는 '아델피'(Adelphi)', 그리스어로 형제들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다. 이런 잡지라면 내 글도 수록해주지 않을까?
2. 그래서 찾아갔다. "헉, 블레어쨩! 여긴 왠일이야?" 알고보니 잡지의 편집자 리처드 리드씨 역시 이튼 칼리지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의 풀네임은 『Sir Richard Lodowick Edward Montagu Rees, 2nd Baronet』로 무려 준남작까지 해먹으신 옥스퍼드 대학교 졸업자셨다. 여하튼 덕분에 아델피에 "교수형"을 수록한 것을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글을 수록할 수 있었다.
3. 몇년이 지나고 오웰이 헌책방에서 일할 무렵, 리처드는 오웰의 문학생활에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다. 이 시기 오웰과 리드의 회고를 종합해보면 요 3년간 리처드는 만날때마다 끊임없이 사회주의자가 되어야한다고 츄라이츄라이츄라이츄라이를 외쳤다고 한다. 심지어 일하는 헌책방까지 찾아온 것같다. 으아악, 이건 아니지. 하지만 오웰은 끝끝내 넘어가지 않았다.
4.한편 오웰은 1935년경 아델피에 쓸거 없으니까 시를 몇편 투고했는데 마음에 들었나보다. 편집부 왈 "올해 발표된 시 중에서 가장 멋지다!" 별거 아니란 소리군. 오웰에게는 별로 감흥이 없었나보다.
5. 3번과 4번이 겹쳐져서 삔또상한 오웰은 특유의 고로시를 시전한다. 1936년 반자전소설인 '엽란을 날려라'에서 필립 레블스턴이라는 가명을 통해서 부유하면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지만 끝내 노동계급와 융합되지 못하는 인물을 묘사한다. 당연하지만 소설은 망했다. ㅎ(아, 물론 예나 지금이나 성공하지 못한 소설은 다 망한거다.) 문학 집행인으로서 소설을 읽어준 리스도 "블레어쨩, 소설 완성도가 너무 안좋아!"라고 하면서 비판했다. 친구가 지 고로시한거쯤은 넘겨주었다. (엽란을 날려라 5장은 최소 70%가 실화라는게 내 생각이다.) 말년의 오웰 본인도 뒤늦게 쪽팔림을 느꼈는지 이건 재출판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다.
5. 신작 소설이 망하고 결혼대비용으로 돈이 궁해질무렵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후일 리드는 "3년동안 권유해도 안되던 것을 위건의 탄광이 해결해주었다"라고 하면서 오웰이 빨갱이가 되었음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급발진해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탈고하자마자 편집도 안끝내고 전재산을 처분한 뒤 스페인 여행을 떠나고 만다.
6. 스페인에서 돌아온 뒤 오웰은 리드에게 스페인에서 뭐했냐고 물어봤다. "으응... 난 스페인에서 부상병 후송하는 구급차를 운전했어.." 대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이젠 오웰이 만날 때마다 리드에게 스페인에서 뭐했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7. 그렇기는 해도 둘의 우정은 일단 죽을때까지 이어진게 분명하다. 오웰의 외동아들인 리처드 블레어의 이름이 리처드 리드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말년의 오웰은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완성 못하고 죽으면 리드가 폐기해달라고 부탁했다고도 한다. 으아악, 그건 안돼!!!!
마지막으로 후일 오웰은 아델피가 풋내기 시절의 '사격 표적'이 되어주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본인에게는 이제야 오웰이 진정으로 하고싶었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진정으로 쏘고싶었던 것은 종이 나부랭이가 아니라 빌어먹을놈의 샴페인 좌파라는 사실을.
에릭 블레어...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읽었던 거 생각난다. 동물농장이나 1984랑 비교하면 질이 떨어지지만 뭔가 공산주의자로서의 조지 오웰이 탄생한 시야를 알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기억나네.
그러니까 이튼을 나와야 조지오윌같은 혜택 받으면서 샴페인 좌파를 깔수있는 사람이된다는 거네요?
혁명가중 적잖은수가 그 체제의 시혜를 약간 부족하게 받은 인물들인것과 같은 이치 ㅇㅇ
오웰 말년이래봐야 40대 중반아닌가 참ㅋㅋㅋ 엽란을 날려라 읽어봐야겠다
무슨 책 읽으면 이런 내용 알 수 있음?
오웰에 대한 책은 생각보다 많은데 굳이 한권을 꼽자면 '오웰의 코'
오 감사감사
막줄 펀치라인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