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순수 환상을 빌어 문학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사회면 뉴스가 할 법한 역할, 즉 시대흐름을 포착하는데만 집중해 소설을 노려서만 쓰려고 한다


나무 위에서 살기로 작심한 남자 같은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 


미술작품에 홀려든 인간의 영혼을 묘사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 이러한 순수 환상성에 빌어서 (또는 기댄) 소설들이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희망은 없고 , 세속적으로 따져도 기대만큼 팔리지 않는다 


왜 혹자들이 한국문학의 희망이 청소년문학에 있다고 하냐면 그것은 청소년 문학의 주제와 환상성이 일반 독자로 하여금 순수 소설이 가야 할 방향성을 


어렴풋이나마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고 그 너른 이야기로부터 독자들은, 자신들의 꿈을 꾸는 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서 한국소설은 어차피 맨날 경제불황, 요번 핼러윈참사, 각종 시대 이슈, 불평등, pc 에 사로잡힌 빈 깡통으로, 


예쁘게 포장해서 출시될 뿐일 거고 그러다보니 항상 한국에서 소설은 


통용적으로 "무언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소설로 전락했다


순수 환상을 즐기지도, 써내지도 못하는 쇼윈도 작가들 (이것은 내 표현) 


또는 순수 환상을 즐길 줄 모르는 애석한 독자들이 부단히도 작품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전반적인 이 모습들이, 나는 그것이 가장 슬프고 비참하다 


그들은 소설이란 것을 감히 사회에 도움 주는 충실한 개마냥 도구로 전락시키며 순수 환상을 꿈꾸지 않는다


한마디로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적 환상에 도움을 받아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고 일단 사회의 주요 이슈를 검색하고 그것에 맞추어 쓴다 진짜 슬프다. 개 같은 한국 소설이여 그러거나 말거나 난 세계문학 읽고 쓰며 독학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