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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되어서 베른하르트의 글들을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다. 다음은 아마 <혼란>이 될 것이고 그 다음은 <대가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글쎄,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베른하르트에게는 뭔가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있고, 그것을 여기에서도 똑같이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몰락하는 자>를 읽을 때 나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고, 새벽에 페이지를 넘기면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그 안타까운 감정과 열등감 속에서 이따금 공감하기도 하고, 이따금 그것을 즐겨 읽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한심해보일지 마치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보는 것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스스로를 생각해보기도 하며, 다시 몇 번이고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당시와 다른 점은 지금 나를 사로잡은 것이 슬픔은 아니라는 걸 테다. 애초에 내게 슬픔이라는 것은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당시에 느꼈던 것 역시 순수한 슬픔은 아니었다. 보통 이 감정들은 감정을 느끼는 주체인 나와, 이 감정을 느끼는 주체를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내가 합쳐지며 나타나는데, 그렇기에 나는 나라는 관객에게 이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실제보다는 보여주기 위함으로 스스로의 안에서의 생각들을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의 균형이 무너지며 한쪽이 와르르 쏟아져내리면 문득 더 이상 감정을 실제로 느끼고 있는 배우는 없이 두 사람 모두 관객으로서 저 멀리에 앉아 빨리 다시 슬픔을 느낄 사람이 무대에 올라와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고만 있을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이 슬픔이라는 감정이 내게는 얼마나 주제 넘은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관찰 역시 불필요할 정도로 깊게 캐묻고 있기에 생기는 이질감일 뿐인데, <걸리버 여행기>에서 거인들을 가까이에서 본 걸리버가 사람이란 가까이에서 보면 얼마나 이질적이고 역겨운지 토로했던 것처럼 사실 생각이라는 것은 최대한 부드럽게 뭉개고 두루뭉실하게 넘길 때에야 비로소 무언가 의미 있어 보이고 아름다워보인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저 모든 생각들이 다 이렇게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 괴상하고, 조금씩 역겨운 것을, 무언가 특별하고 신기한 것을 찾았다는 것처럼 다뤄서는 안 되는 것인데. 실제로 지금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 느낀 무언가를 그대로 표현하고자 모사하듯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지만 그것은 그저 태양이 내는 빛을 아주 약간 반사하고서 자기도 빛을 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 달의 생각과 다를 것도 없고, 태양과 달의 관계가 아닌 한 항성과 수많은 위성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 위성들이 자기는 얼마나 독창적이고 얼마나 환하며 얼마나 신비로운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의미할 테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하고 생각하는 수많은 군중 속의 똑같은, 고독한 외침들. 그나마도 이미 그 외침이란 아주 잠시 그 사람이 받고 반사한 빛의 그림자에 불과해서,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듯 사라진 생각 이후 그 껍질 아래에는 아무 것도 없이, 무언가가 있었다는 흔적만 이 텅 빈 고치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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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글쓰는 방식 따라한 독후감방식인듯ㅋ
책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은 좋네요
그렇게 느꼈다면 베른하르트를 좋아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