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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키르케고르의 기독교적 설교집. 또 영원 같은 조금 애매한 형이상학적 개념이 나온다. 신이나 불멸 천상계 이런 종교적 개념인가. 개념이 애매하니까 종교적이고, 교조적이다. 믿음만으로 결과적으로 정신적 소득이 있으니까 믿는다. 그게 관습적으로 권위가 있는 믿음이라면 더 확고하다. 그러면 그 관습의 시초는 어떤가? 그냥 별 이유 없이 주류가 끌리는 대로 해놓고, 버릇이 됐을 것이다. 단순하게 서로 사랑하라.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겉보기에 별 해로울 거 없이. 이로워보인다. 그게 진리라고 여기는 것의 대부분의 시초다.
너무 기독교 원리주의에 입각한 설교만 해서 별로 흥미 없었다. 동기적 사랑보다 결과적 사랑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 보여줄수 있고, 나쁜 의도가 좋은 의도 보여줄수 있다. 자본주의처럼 개인의 이기심이 공리적으로 좋을 결과 낳는 게 더 중하다고 본다. 이타심보다 이기심이 인간에게 더 본질적이라 믿는다. 사람 속마음은 몰라서 정치인들 처럼 이미지정치라고 겉으로는 이타적인 채하면서 실속 챙기는 놈들이 너무 많다. 그러면 동기도 나쁘고 결과도 나쁘다. 오히려 사회구조적 효율적으로 동기도 좋고 결과도 좋은 유형이 희소하게 된다. 인간본성적으로 순결무구하게 선한 의도를 지니는게 가능하진 회의적이다. 기본적으로 식욕성욕 기본욕구가 이기적 욕구인데, 사회조직에 필요한 순수하게 이타적 욕구보다 더 비중이 높다. 자이나교 처럼 엄격하게 불살생고행주의 해서 뭐가 남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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