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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 아름다움.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던 만큼 나비는 그림을 사랑했고 시각적인 요소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했음.


그림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언어의 아름다움을 비출 수 있는 시의 영역에 빠져들었지만,


뚜껑을 열고보니 그는 여러가지 소설적 기법을 잘 섞어 운문을 만드는 데 탁월한 작가였음.


그래서 다른 소설가와는 다르게 나비는 산문 작성을 시로 취급하고 그 안에서 회화적 특징을 극대화함.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러분 모두를 납득시키고 싶다.


(생략)


하지만 말 그 자체의 본성 탓에 닮은 두 얼굴을 말로는 완전히 묘사하기 어렵다는 점이 두렵다.


그러니까 말이 아니라 물감으로 그들을 나란히 그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말하는 바가 관객에게 분명해지지 않을까?


독자를 관객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작가가 가장 바라는 바다. 언제 이를 성취할 수 있을까?


문학 속 인물들의 핏기 없는 유기체는 작가의 감독하에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아 있는 독자의 피로 가득 채워진다.


-[절망(최종술 역)] 1장 중




여담으로 나보코프의 소설은 다른 소설들과 구별되는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상당수의 서사 전개가 미신(귀신)과 우연성에 기대거나, 단어 선택, 문법의 구사가 특이하고,


묘사가 길고 장황하지만 그림 감상하는 것 마냥 직관적이라는 점,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관념의 비중이 적은 부분.


이는 그가 영어(모국어X)로 작문을 했고, 관념이나 음악에 관심이 없었으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않했고, 언어와 그림에 특별한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음.


대신 기본적으로 글을 잘쓰니 다른 소설과 다른 부분이 오히려 나보코프만의 독특함으로 자리 잡고 


그 특유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던 거임.




나보코프의 아름다움을 곱씹기 위해선 재독(어떤 창백한 작품은 3회독까지)을 해야함.


왜냐하면 회화적 아름다움과 언어적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선 초독으로 읽고 끝내면 안되기 때문.


만약 소설을 처음 읽는다 그럼 당연히 스토리에 눈길이 감.


나보코프도 이러한 부분을 알았기 때문에 소설의 기본적인 서사 뼈대를 분명하게 만듦.


독자들을 만족시킬 이야기를 제공해준다는 뜻.


그러나 독자는 초독을 마치면 서사가 진부하면서도 알쏭달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완독한 시점에서 만약 독자가 더 나아가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그는


회화적 아름다움.


기본적인 서사가 머리에 그대로 저장된 채 구석구석 나보코프가 색칠한 그림들을 감상하게 되는,


다시말해 전체 이미지와 함께 그 세밀한 영역까지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됨(더이상 선형적으로 읽지 않아도 되는 독서 가능).


게다가 평론가 로쟈가 지적했듯 나비의 소설은 시와 마찬가지로 자기지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재독을 하게 되면 소설 안에서의 문자 간 상호작용 및 대입이 가능해 회화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언어의 아름다움까지 즐길 수 있음.


퍼즐이 맞춰지는 것같은 기분.




그 퍼즐은 교묘하게 만들어져, 단순한 원반(나중에 이것은 푸른 하늘로 드러났다)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양이 다 달랐고,


모서리며 돌출부,


가운데 잘록한 부분,


교활한 돌기 부분 등이 모두 달라서 어디에 딱 들어맞는지 가늠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이미 거의 완성된 젖소의 얼룩무늬 가죽을 채울 조각이 이게 맞는지,


초록빛 배경의 가장자리 이쪽에 보이는 검은 부분은,


좀 더 노골적으로 형태가 드러난 조각에 그려진 귀와 머리 일부가 분명히 보이는 양치기의 지팡이가 드리운 그림자 부분인 건지.


그러나 일단 젖소의 엉덩이가 점차 왼쪽에 나타나자 오른쪽에는 잎 수풀을 배경으로 파이프를 든 양치기의 손 하나가 나타났으며,


위쪽의 허공이 맑디맑은 하늘의 푸른색으로 둘러싸이자


아까 그 푸른색의 원반 조각이 그 하늘에 순조롭게 딱 들어맞았다.


루진은 마지막 순간에 가서 하나의 명료한 그림이 만들어지는 가지각색 그림 조각들의 절묘한 결합에 전율을 느꼈다.


-[루진의 방어(김윤하 역)] '오리지널 오브 로라' 해설 속 대목




이런 취향이 잘 맞으면 진짜 나비는 대박 작가이니 나로선 한번 트라이 해보라고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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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자신의 문학적 위치를 점하기 위해 톨스토이의 미학을 찬양하면서도 나비 스스로의 문학적 견해를 견고하게 했다고 하는데


톨스토이에 대한 나보코프의 평은 대략 이럼: 아무도 그의 공리주의적 도덕주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천재이다.


안나 카레니나: 비교할 수가 없는 산문의 예술성. 19세기 문학의 최고 걸작.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안나 카레니나에 버금가는 작품.


부활: 혐오한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혐오한다.


나비는 톨스토이가 잘쓴 작품(물론 나비 입장에서)을 찬양했지 그의 미학(예술론)까지 찬양하진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