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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스트레이 십이었던 산시로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돌아보면 산시로 주변에도 우리 주변에도 길을 잃은 스트레이 십이 많이 있다는 게 아닐까 한다.



주인공 산시로는 작중 내내 시골에서 상경해 어리숙한 나 자신을 의식한다. 그런 자의식의 바탕에는 요지로나 미네코 등 세련되고 도쿄다운 인물들에 대한 긴장이 있다.

한편으로는 동경하며, 또 한편으로는 낮잡아보며 시골에서 온 자신과는 상반되는 도회적인 인간들에 대한 비교로 점철되었던 우울한 나날은 아이러니하게도 산시로 앞에 닥친 역경 앞에서 해소된다.


요지로가 위대한 어둠운운하며 히로타 선생을 추앙했던 소행 때문에 산시로가 누명을 썼는데, 이때 산시로는 왜 자신이 누명을 쓴 것 같냐고 요지로에게 물어

역시 자네(산시로)는 본과생이고 나(요지로)는 선과생이어서가 아닐까라는 대답을 듣는다. (같은 대학이어도 선과는 본과에 비해 열등한 대우를 받음)

산시로는 목전의 급한 일 때문에 이때는 귀 기울이지 않았으나, 아마 추후에는 이 답변이 자신의 고민에 대한 묘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열등감은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 해소되지 못한 고민을 안고 떠돌고 있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위로 말이다.


기차 승객에게 당신은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라는 무시로 시작된 상경 수난사는 산시로가 타인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여유를 빼앗았었다.

어떤 일을 겪어도 광선 압력 실험의 결과를 보듯이 이것이 도시의 삶이구나, 이것이 도시 청년의 모습이구나하며 주변 사람을 무미건조하게 관찰한 것도 타인 개개인에 대한 진지한 이해나 접근 없이 도쿄라는 프레임에 그들을 가뒀기 때문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중에서 본과와 선과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던) 산시로의 입장에서는 생각지 못한 요지로의 그러한 차별감은 자신이 제멋대로 만들었던 도시인에 대한 은근한 열등감에 금을 그었을 것이다.


산시로는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고민의 근본은 시골 출신이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에 있는 것이며, 자신에게는 이러한 고민이, 다른 사람에게는 저러한 고민이 있는 것이라고.

사실 모든 사람은 인생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며 먼 구름만 기웃거리는 스트레이 십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다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첫 만남부터 언덕 위로 올려다보았던 미네코도 그때 동시에 어딘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화가의 집에서 산시로가 미네코에게 고백 비슷한 것을 싱겁게 하고 미네코의 혼담을 알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산시로가 큰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도 미네코의 방황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주관과 구습 사이에서 방황하다 끝내 항복했지만 그 사이에 미네코가 겪었을 혼란과 고민, 부채로 가리며 바라본 하늘에서 공연히 구름만 쫓아야 했던 마음을 말이다.


미네코의 방황과 산시로의 이해는 둘의 작별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미네코가 떠넘기듯 빌려줬던 30엔은 산시로에게 줄곧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었다.

시골에서는 무려 한 가족의 반년 생활비, 도쿄에서는 고작 바이올린 하나 값 정도로 취급되는 그 30엔은 산시로와 미네코의 따라잡기 힘든 간극이다.

, 둘의 관계는 서로 간의 호감을 떠나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볼 때도 이루어지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처음 30엔을 주고받을 때의 엉성한 과정도 아마 이루어질 수 없는 교제의 암시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 30엔에는 누구보다 깔끔한 결말이 필요했다.

산시로가 도시와 시골이라는 차이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서 미네코와 작별을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작품 내내 산시로는 할 말이 없었다.’, ‘산시로는 이런 상황에서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하며 대화 중간중간 어색한 적막만 쌓아왔던 주인공이 30엔을 갚을 때

빌린 돈입니다. 오랫동안 고마웠습니다. 돌려드려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그만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며 조리 있게 말하는 장면은 작품 내 산시로가 갖고 있던 모든 장애와 고민을 한데 일축하는 하이라이트다.



30엔이 산시로의 이해와 수용을 의미하는 반면, 뒤이어 미네코가 내민 향수 뿌린 손수건은 작품 안에서 채 드러나지 않았던 미네코의 방황을 의미한다.

미네코는 산시로가 멋모르고 적당히 골라준 향수를 줄곧 써오며 자기 앞에 놓인 여러 세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손수건의 향을 맡은 산시로는 느꼈을 것이다.


그날 고른 헬리오트로프 향의 날카로움,

향수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미네코의 마음,

방황하던 두 명의 스트레이 십...



30엔이라는 마음의 짐을 덜어낸 산시로에게, 미네코는 더 이상 막연하고 아득한 동경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손수건의 헬리오트로프 향을 30엔 지폐의 쾨쾨한 냄새로 덮은 지금, 미네코에게도 산시로는 더 이상 특별한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둘은 전보다 더 가까운 유대감을 갖고 서로를 이해하게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스트레이 십끼리 말이다.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 노르웨이의 숲 비슷한 책 찾는 질문 글 있으면 산시로 추천함 ㅋㅋ

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