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책을 보고 습작을 시작했다. 그가 제시하는 방향성을 따랐고, 어휘, 문체, 문장을 끌어다 연마했다. 그로 인한 재미를 보진 못했다. 점진적으로 더해지는 좌절과 앞으로 내딛기 힘들 정도로 등에 쌓이는 부담감만 떠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떻게 방도가 없나 주위를 둘러보던 도중에, 현대 소설에 쓰이는 방식을 탐색하고 발굴하고 숙지하고 제련했다. 그 후,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들여다보았다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독갤에서 라노벨 작가 취급을 받으면 쉴드를 쳐주곤 했는데, 그런 보호가 무안해질 만큼이었다. 이런 말하면 분명 대차게 까이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완결성에서 동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헤밍웨이에 비하면 큰 격차를 이루고 있었다. 근래에 양산된 신춘문예를 보더라도 그보다 훨씬 나은 문장이 몇 개 보인다. 내가 비뚤어진 시선을 가졌는지도 모르지만, 2002년의 축구가 지금과 다른 것처럼 그때의 산물이 확률적으로 저하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믿는다. 어쩌면 번역을 거치면서 일어나는 변화가 작품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보지 못하도록 내 시선을 왜곡시켰을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게 주된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