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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많은 것들을 하려고 한다. 성과사회에서 생산성과 바쁨은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열심히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사회는 개인을 주체적으로 만든다. 동시에 모든 책임도 개인에게 주어진다. 성과사회 이전 시대였던 규율사회의 착취자는 타자였지만 이제 착취자는 자신이 되었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강력하다. 자기 착취의 감시자는 항상 곁에 있으니까.
깊은 사색을 해야 대상을 깊게 바라 볼 수 있지만 활동성 과잉에 시달리는 성과 사회의 자아는
산만해질 수 밖에 없다. 집중의 퇴보인 멀티태스킹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많은 활동으로 성과를 냈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얻을 순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은 모든 것이 가능한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저자는 성과사회의 생산성과 바쁨으로 산만해져 깊은 사색을 할 수 없는 현대인의 자아상을 지적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그러한 성과사회의 특징도 저물어 가는 것 같다. 물론 성과는 계속 중요하겠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달라질 것이다. 생산성은 많은 기술과 a.i들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성과사회에서 생산성이 중요했었다면 앞으로는 사색이 더 중요시되는 사회가 될 것 같다.
물론 이전에도 대량생산 기계들이 있었고 시대마다 깊은 사색을 통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성과를 가져갔다. 그런데 다가올 근 미래는 그런 대량생산 기술들이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대체한다. 앞으로 깊은 사색은 대체할 수 없게 되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사색적 주의의 거장이었던 폴 세잔은 언젠가 사물의 향기도 볼 수 있노라고 말한 바 있다
깊은 심심함을 견뎌야한다.
성과사회의 종언은 기본소득제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