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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를 다시 읽어보고 있다. 사실 울프의 글들 중 가장 먼저 읽었던 건 약간의 컬트 밈이 있는 <올랜도>였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여기서 울프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좀 애매한 범작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기만의 방>이나 <3기니> 등을 읽고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가 읽게 된 것이 바로 이 <댈러웨이 부인>. 사실 당시에는 <댈러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아직 문학이라는 것에 익숙치 않기도 하여, 약간은 압도되면서도 그 압도감 자체에 흥미를 느꼈었다. 덕분에 지금 이를 다시 읽으며 그 당시에 내가 어떤 지점에서 압도되었는지, 어떤 것에서 이해를 멈췄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참 재밌었다.

<댈러웨이 부인>은 속물들의 사회 속에서 무상감을 안겨주는 글이다. 윌리엄 블레이크를 연상시키는 무감각한 예언자 셉티머스와 위선적인 상류층 사회의 교류 속에서 타성감에 젖은 댈러웨이 부인을 중심으로, 어떻게 그 두 사람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이 전혀 그 사람들의 본질에 와닿지 않다가도, 이따금씩 드러나는 아주 미미한 틈-예지, 혹은 회상-을 통해 사회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의 본질, 약간 낯간지러운 말로는 영혼이 빚어진다. 그러나 이 깊숙한 용광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회는 여전히, 누가 타고 있는지도 모를 차량에 경의를 표하다가 하늘에서 광고를 하는 비행기를 응시하고, 한두 마디의 대화를 위해 멍하니 서서 파티를 채우고만 있다.

하지만 역시 울프를 다시 읽으며 드는 생각이지만, 이렇게나 많은, 너무나도 많고도 정리되지 않는 수많은 의식들이 한 도시를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은 너무나 정신분열적이다. <댈러웨이>는 이후 그녀의 안에서 쏟아져 나올 용광로의 뜨거운 열기를 아주 약간이나마 새나오도록 내버려두며, 무엇이 사람을, 이 육체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속에 존재하면서 사회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사람을 구성하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수많은 단편적인 생각들이 서로 조각처럼 맞물리지만 결코 제대로 합쳐지지는 않아서, 이따금 자신을 생각할 때면 어째서 자신은 이리도 통일되지 않은 사람인가, 하고 스스로의 속물성에 놀라며 슬퍼하게 되는, 그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