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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장소, 경계』
1부 1장 정리
  이 책은 사회학이 공간을 등한시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이 장에서는 사회학에서 왜 공간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았는지 크게 다섯 개의 이유를 들어 말한다.

(0) “공간이 국가사회주의에서 차지했던 역할”
  근대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주의는 무분별한 영토의 확장과 폭력적인 식민지화를 불러왔다. 특히 저자는 독일인이라 나치즘에 주안점을 두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한 문제점들을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이 공간 담론에 소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 “사회학이 (…) 관념론적 철학에서 그 본질적인 자극을 받고 있다는 사실”
  의식 철학에서는 공간에 대해서는 몸을, 시간에 대해서는 의식을 연결시킨다. 그런 점에서 의식과 시간이 더 몸과 공간에 비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2) “공간은 발전, 진보, 근대화의 걸림돌”이라는 인식
  전통적으로 시간은 긍정적인 것, 공간은 부정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이는 (1)과도 연관된 생각으로 보인다. 한편 “근세와 근대의 역동성은 새로운 공간의 개척으로 이루어진다.” 공간 정복의 욕구가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큰 동력이었다는 점에서 공간 담론의 부재는 아이러니해 보이기도 한다.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0)이 이를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3) “공간은 지리학의 당연하고도 본연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공간에 대한 연구가 전적으로 지리학에 위임되면서 공간은 곧 땅의 지표와 동일시되었다. 학제의 분리 이후 교류가 거의 없어지면서 공간이 다뤄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4) “사회학이 사회적인 것을 근공간 관계에 겨냥”
  고전적 관점은 가까운 관계(공동사회)를 긍정적으로, 먼 관계(이익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생활세계에 대한 선호는 사회학에서 공간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을 방해했다. 한편 공동사회에 대한 긍정은 현재 지역성의 선호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지구화에 맞서는 지역성의 구도는 이익사회에 대한 공동사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1부 1장 덧붙이기

(1)에 대해서.
- 마침 직전에 읽은 책이 『파이돈』인데, 여기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영혼의 불멸에 대해 말한다. 동시에 감각적 인식을 경계하고 이성을 통한 탐구만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 주장한다. 종합하면 죽음을 통해 몸에서 해방된 영혼은 비로소 진리에 이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인데, 그런 점에서 의식과 시간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 이성관 건축가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건물(공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평가나 인식은 일시적이고 시간에 달린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시간을 공간의 우위에 두는 고전적 정신의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성관 건축가의 생각은 강연을 통해 본인이 들은 것으로 실제 주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

(4)에 대해서.
- 전후 발전국가 시기 건축가들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탐색을 진행했다. 이런 탐색 역시 근공간에 대한 선호와 지구성에 대한 반감의 영향 아래 있는 듯하다.

- 한편 현재 지구화가 이루어진 세계는 “국가적 구속을 벗어나고 전 지구적 관계들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데,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가 “개인의 해체와 공간으로부터의 점진적 해방”의 한 예로 생각된다.


사회학은 역시 꿀잼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