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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다 가느다란 삼실은 천연 눈의 습기가 없으면 다루기 어려워 찬 계절이 좋으며, 추울 때 짠 모시가 더울 때 입어 피부에 시원한 것은 음양의 이치 때문이라고 옛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시마무라에게 휘감겨 오는 고마코에게도 뭔가 서늘한 핵이 숨어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한층 고마코의 몸안 뜨거운 한 곳이 시마무라에게는 애틋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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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뒤집어쓴 타다 남은 시커먼 나무들이 어지러이 흩어진 속에서, 고마코는 게이샤의 긴 옷자락을 끌며 비틀거렸다. 요코를 가슴에 안고 돌아오려 했다. 필사적으로 버티려는 얼굴 아래, 요코의 승천할 듯 멍한 얼굴이 늘어져 있었다. 고마코는 자신의 희생인지 형벌인지를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그는 고마코의 외침을 들었다.
"이 애가 미쳐요. 미쳐요."
(...)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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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무라는 객지인이다. 도쿄에서 떠나 산행을 하던 중 우연히 만난 온천 여관에서, 시마무라는 오래도록 신세를 지게 된다. 이 인연은 쭉 이어져 삼 년째에 이른다. 시마무라는 이제 이곳에서 맞이하는 겨울이 익숙하다. 눈이 오면 사람 키보다도 높게 쌓이는 이 산골에서, 시마무라의 생활계절이 빚어낸 풍경과 풍경 속 사람들이 자아내는 일상들로 가득하다.


시마무라는 이유가 없는데도 도쿄로 돌아가지 않는다. 떠나고 싶어서 떠나온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바라서 떠나온 것도 아닌데, 마냥 떠나지 않는다. 그저 버릇처럼 이곳에 찾아올 뿐이다. 그는 어디에서나 객지인이고, 어디에서나 잠시 머무르다 가는 사람이다.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이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그의 생활을 구성하던 무언가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마무라가 일종의 방랑벽을 보이는 것은 무위도식하는 삶의 태도에서 배어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시마무라는 산행이 취미인데, 그는 무의미하게 산을 걷는 일따위를 헛수고의 표본이라 생각하는 한편, 바로 그 부분에서 비현실적인 매력을 느낀다. 부모에게서 재산을 받아 한가로이 살아가는 시마무라에게는 이런저런 일들이 다소 무의미하게 보일 뿐이다.

헛수고. 그는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 간호하는 요코를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헛수고. 시마무라의 눈에는 이 모든 일련의 삶들이 번거롭고 헛수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마무라는 헛수고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떠날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닌데, 헤어지기 싫은 것도 아닌데, 그는 떠나가지 않고 여기에 머무른다.

그가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대대로 지지미 원단 짜는 일을 하는 마을에 갔다오고 나서부터다. 이 고장에서는 어릴 때부터 직녀 일을 배운 숙녀들이 겨울 내내 지지미 원단을 짜며 유년을 보내고, 15, 6~24세가 되면 정식으로 직녀가 되어 원단을 짠다. 또 당연하지만 빛바랜 원단을 다시 하얗게 만드는 작업도 더불어 이루어진다. 그 일은 눈이 없으면 하기가 힘들어, 매 겨울에 이루어지고, 옷은 봄부터 팔려나가 사람들은 여름에 입고 다닌다. 눈과 같은 순백의 지지미는 한 계절을 관통하는 원단인 것이다.

하지만 시마무라는 빛바랜 원단, 그 원단들이 순백을 되찾으며 가라앉는 햇살에 반짝이는 풍경을 보지 못한 채 다시 여관으로 돌아온다. 그가 보지 못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어쩌면 50년도 되었을지 모르는,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원단 만드는 풍경을 모른다. 눈 속에서 베짜는 여인들의 그 생활을 시마무라는 보지 못한다. 무명의 장인은 죽었는데, 옷은 남고, 그것이 사치스럽게 자신의 계절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시마무라는 문득 신기하게 느낀다. 그는 헛수고가 아닐지도 모르는 생활을 보러 갔다가 헛수고만 하고 돌아온다.

사계절 내내 눈이 오는 이 풍경은 곧 사람들의 생활과 이어지고, 이러한 생활들은 곧 풍경이 된다. 한겨울 아이들이 2층까지 쌓인 눈속에서 헤엄치는 풍경, 눈사태가 들이닥쳐 여관 2층 장지가 전부 휩쓸린 풍경, 처마와 처마를 연결한 사이 길가로 눈이 쌓여 터널을 파놓은 풍경, 나방이 자꾸만 달라드는 풍경, 벌들이 기어가다 죽는 풍경, 기차가 오고 가는 풍경, 차창 너머와 안의 풍경, 국경 터널 너머 펼쳐지는 설국의 풍경.

풍경은 너무 크고, 모든 걸 헛수고로 만든다. 시마무라는 무위도식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데, 사람들은 다들 바쁘고, 시마무라는 그것에 이끌린다.하루부터 읽은 책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일기를 남기는 고마코에게 이끌리고, 탕에 들어가 노래 부르는 매사에 진지한 요코에게 이끌린다. 매사에 진지한 요코에 비하면 그는 매사에 가벼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설 마지막에서는 마을에 불이 난다. 요코가 있는 집에 불이 난다. 불이 난 곳은 누에고치 창고로, 다행히 고치는 없었는데, 형식적으로 차려진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중이었다. 요코는 그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불은 타오르고,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따라 불을 보러 가고 싶다. 그는 호기심에 이끌린다. 하지만 그는 객지인이고, 그가 굳이 갈 필요는 없으나, 그는 고마코를 따라 불을 보러 간다.

사람들은 물을 나른다. 펌프에는 이미 소방수들이 둘러싸고 물줄기가 불똥이 튄 곳을 향한다. 대들보가 내려앉고 연기가 올라간다. 연기가 올라가자 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져있다. 시마무라는 문득 그 은하수가 자신에게 쏟아질 듯하다. 그 은하수가 대지에 내려앉아 안아줄 듯하다. 고마코의 손은 따스하고, 시마무라는 이별을 예감한다.

그러고 있는데 요코가 2층에서 떨어진다.
요코는 마치 인형 같은 움직임으로, 생명이 모두 사라진 자유로움으로 삶도 죽음도 정지한 모습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앗 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잿빛 잔해와 아치형 물줄기 사이,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요코가 떨어진다. 관객은 많았어도 부상자는 없었는데, 이 집에서 생활하던 요코만이, 매사에 진지하던 요코만이 떨어진다.

고마코가 뛰어들어가 그녀를 데리고 울부짖으며 돌아오는데, 시마무라는 요코를 받아안으려는 사람들에게 떠밀린다. 발에 힘을 주자 은하수가 쏟아질 듯하다.

설국은 눈에서 시작해서 불로 끝이 난다. 시마무라는 설국에서 언제나 관찰자였고, 그는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그는 이곳의 삶에 이끌리고, 관찰자가 된다. 하지만 그가 관찰자가 되어갈수록 삶은 짙어지기보다 멀어지곤 한다.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언제나 양가적이다. 원단은 찬 계절에 만들어지지만, 그는 여름에 그것을 입는다.

고마코와 요코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변화무쌍한 산의 경치 사이에 놓여있다. 풍경은 다채롭게 변화하고 그들도 그에 따라 변한다. 풍경이 삶을 만들고 삶이 풍경을 만든다. 오가는 사람들을 따라 그들의 마음이 오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정에 따라 이곳을 떠나기도 한다. 풍경이 풍경을 밀어내고 풍경을 끌어온다. 희극도 비극도 이 산촌에 의해 그림을 달리해나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을 그리고 싶었을까 설국에서의 삶을 그리고 싶었을까. 아니면 설국을 그림으로써 설국에서의 삶을 그리고 싶었을까. 설국에서의 삶을 그림으로써 설국을 그리고 싶었을까. 설국은 있고, 사람들이 있고, 삶이 있고... 그럼 그 풍경들로부터 무엇이 남는 걸까.

만약 시마무라가 화가였다면, 아니면 자신의 일에 진지해서 정말 제대로 전통극을 연구하는 학자였다면, 그래서 극을 연구하든 그림을 남기든 해서, 어떤 형태로든 무엇을 남겼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러면 요코도 불에 타지 않고 남았을까. 그는 고마코와 있기 위해 남았을까. 그런데, 그에겐 도쿄가 남아있는데, 그가 무엇을 남기련들 무엇이 남을 수 있었을까.

차창 너머로 비추는 빛이 요코의 얼굴과 겹쳐진 그 순간부터, 시마무라는 이 고장에 머무르며 줄곧 그들에게 내재된 빛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불이 자아낸 일렁임이 요코와 겹쳐졌을 때, 그는 고통과 비애가 있었다고 말한다.

국경의 긴 터널 너머에는 설국이 있고, 역장님- 역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있는데, 은하수가 내려앉아 이 풍경을 모두 안아줄 듯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