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1부를 중심으로 썼음. 누가 더럽게 못썼대서 수정 좀 해봄. 비판, 비추 환영. 근데 결벽증이 좀 있음
1.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미 예정된 일이라면? 지금 불어오는 실오라기 같은 사소한 바람도 저 멀리 어느 지점에서 시작돼 많은 변수들을 거쳐서 나에게 왔을 것이다.건물에 부딪혀 조금 약해지기도 했을 것이고 다른 바람을 만나서 합류하기도 했을테고.그렇다면 그러한 수많은 변수들이 더해져서 나에게 도달한 '바람'이 되었을 것이고 이렇게 도달하기 위한 변수도 돌이켜보면 많은 변수위에서 발생한 것이다.결국 세상일이란 게 수많은 변수들의 연속반응일 뿐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 변수들의 상호작용이므로 x라는 한가지 답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모두 다 결정된 것이 아닐까?
책으로 돌아가보자. '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은 2x2=4라는 수식을 인용한다. 위에 설명한 내용처럼 2를 두번 곱하면 당연히 4라는 수식으로 결론난다.우주가 2x2라는 변수들로 깔아놓고 4라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 그렇게 세상은 모두 다 정해진 원인(2x2)에 의해서 예정된 결과(4)를 도출하기를 반복하는 것인가?이때 느끼는 답답함. 이 답답함을 주인공은 '벽'으로 비유한다.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그 '벽',모든 일들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세상은 무의미하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당신은 '모든 자연의 법칙에 침을 뱉을 것이다'라고 주인공처럼 반응할것인가? 아니면 다르게 반응 할 수 있을 것인가?여기까지가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1부에 나오는 '결정론'에 관한 뼈대이다.
2.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결정론을 말했다면, 그 관점을 사람에게 가져와보자.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 글을 보게 된 게 바꿀 수 없는 운명이었다면? 그렇지 않을거라고, 세상은 자유롭다고 생각할 반응도 모두 예정 돼 있는것이라면? 어떨까?
이 글을 보기까지 많은 변수들이 이미 존재했고 결국 당신이 이글을 클릭하도록 만든 모든 변수들이 존재 했으니까, 당신이 이 글을 보게 된 건 당신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 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즉, 당신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말이다. 갑갑하지 않은가?'지하로부터의 수기' 주인공이 말하는 갑갑함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당신의 행동이 모든 원인(2+2)에 따른 결과(4)일 뿐이라는 주장에 따르면, 나에게서 '자유의지'란 소멸한다고 볼 수있다. 그 순간부터 주인공은 자유로운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해 스스로 통찰하게 되고 모든 행위를 유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미 다 예정된 행동들(4)이니까. 행동 하나 하나가 이미 결정 돼 있는 운명이라는 벽들이 되어버린다.
3. 이 소설의 주인공은 왜 그렇게 스스로 불행하게 만들어야만 했을까?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예를 들어 복수든 뭐든,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행동할 수 있는) 즐거움을 거부함으로써 모든 자연적인 본능(2+2)을 거부하고 스스로 불행(4가 아닌 선택)을 선택한 것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욕구를 자꾸 억누르면서. 자신이 행동 해야 할 모든 동기들을 절실히 느끼고 있음에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행동(운명)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자유의지를 만끽하는 것이다.
4. 주인공은 스스로 극도로 불행하게 만든다. '나는 사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악한 자도, 비열한 자도, 정직한 자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가 없었다.'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 제거 해버렸다. 어떤 일도 상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운명이란 벽에 둘러 쌓이게 되므로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듦으로써 '자유의지'를 재확인하고 자기 존재를 재인식한다. 결국 자신의 이익(자유의지)을 위해 일단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이익과 자기자신을 스스로 비난하는 불행을 감당하면서, 결국 '자유의지'를 쟁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자신에게 불리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나중에 돌아올 이익을 위해 감래하는 것.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이 극대화 되도록 행동하는 것. 즉, 주인공은 교묘한 '이기주의자'인 셈이다.
5.이 책이 나올 당시에 유토피아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최대로 잘 조율하게 된다면 우리는 경쟁이나 다툼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는 유토피아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근원에 대한 논쟁도 있었고, 무엇을 진정한 파라다이스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가 한창 뜨거웠다고 한다. 서구주의(서유럽주의)가 한창이던 이 시기에 쓰인 소설이 '지하로부터의 수기'이다.이 소설을 언급할때마다 딸려나오는 한 소설이 있는데, '니꼴라이'의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이다.
니꼴라이의 소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니꼴라이의 '무엇을 할 것인가'의 주인공은 한 여성이다. 가족의 억압된 통제에서 벗어나서 경제적 독립을 찾으려 집을 떠나게 되고, 저자는 주인공이 사회주의자들, 일반 농민과 함께 협력하는 설정을 만드는데, 이 설정은 지성 있는 엘리트들이 일반 농민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된다고 설득하는 것이다.니꼴라이 소설은 자본주의를 배제하고 사회주의로 곧장 이끌려는 의도가 엿보였으며 나중에 공산주의의 한 획을 그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의 모태가 된 책이기도 하다.
6. 도끼는 이 니꼴라이를 책을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통해 반박한다. 특히 1-7장 전체를 읽어보면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사회에서 수집하는 수치들에서 모든 사항을 고려하면서 왜 자신의 불행은 따지지 않느냐고 반문하는데, 즉,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무시하고 운영되는 체제인 전체주의, 공산주의를 염려하는 것이다. '인간의 절대적 이익이 과연 계산된 적이 있던가?'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대로 그런 세상에서 개인이 얻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며 주인공의 불행 따위는 수치에서 배제하는 사회이론이 결국 공산주의라는 실패로 갈 것을 예견했던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잘봤어요. 지하 수기 다시 봐야 할 듯
ㄴ재독 즐독하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