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온갖 수렁과 함정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나를 짓누르기 위한 온갖 간계와 허위가 판치는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일까? 남에게 굴복하지 않고, 고결하면서도 지조높은 자존심은 나를 외부의 힘에 의해 무릎꿇리지 않게 하는 귀중한 자산이다. 이 드높은 자존심 덕택에 우리는 눈앞에 이익에 눈멀지 않으며, 보다 나은 이상과 인간을 추구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타인에게 비굴하게 굴지 않을 수 있게 되며, 비굴하지 않은 덕분에 독립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 자존심은 우리를 어떤 것에 예속시키게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존심은 그 존재로 고상한, 나 자신으로 향하는 힘이다. 하지만, 무릇 인간이란 워낙 다채로운 존재다보니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향하는 힘을 발산하고 싶어한다. 아니, 어쩌면 그럴 운명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그 두 힘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다른 무엇인가로 향하는 힘의 대상이 타인인 경우 우리는 그 힘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을 향한 사랑은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어느 정도는 나에게 상처를 남긴다. 모두가 동등한 정도의 애정을 통해 서로 상처입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행복을 극대화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만은, 아쉽게도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나의 사랑이 타인의 나에 대한 사랑보다 크다면 타인의 사랑은 내 사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질식하기 전에 도망가버린다. 반대로 타인의 사랑이 나의 사랑보다 크다면 나는 그 중압감에 또 다른 사랑의 대상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다!!


작중의 모든 등장 인물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존심과 타인에 대한 사랑의 자기 내적인 힘의 충돌이라는 반작용에 따른 고뇌와 자기의 사랑과 타인의 사랑의 차이 때문에 관계적으로 갈등을 빚는다. 하지만 인간이 애시당초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히 명할 수 없는 이것은 인간이라면 겪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이다.


인간이란 대체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마냥 위장하지만, 사실은 온갖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결집하여 각기 다른 하나의 고유한 인간이란 형상을 빚어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남긴 돌이킬 수 없고 깊은 상처를 끊임없이 보듬고 새살이 돋아나게 하게 하지 못하고 계속 헤집으며 끊임없이 덧나게 하는 욕망 그것은 어쩌면 자기연민에 취한 자들에게는 결코 끊을 수 없는 중독이다. 그것은 우리를 심연의 늪으로 빠뜨린다.


한편, 인간은 매우 어리석게도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준 누군가를 계속 사랑하고 싶은 거스를 수 없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얼마나 비극적인 운명인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가슴에 비수가 꽂혀도 그 비수를 던진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 억누를 수 없는 마음은!


하지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자존심은 그 사랑을 억누른다. 일종의 방어기제인 셈이다. 나는 상처입었으니 또 다시 상처입지 않으리라!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존심이 결계를 친다. 나는 나의 세계로 침잠한다.


결국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존심과 타인에 대한 사랑의 힘의 충돌 속에서 각 인물들이 행복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삶의 구원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힘을 어디로 향해야만 하는가?


나따샤, 나의 나따샤, 어디 있니! 어디 있니! 나의 딸 어디에 있니!


작품은 모욕받고 상처입은(그의 자존심 때문에 고통은 두 배가 된다.) 니꼴라이 세르게이치가, 드디어 자신의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사랑하는 딸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드러낸 하나의 챕터를 위해, 클라이막스를 위해 도미노를 쌓고 있다가 시원하게 무너뜨린다. 이것이야말로 문학 그 자체다.


도스또옙스끼가 상처받은 사람들을 통해 진정으로 현실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우리에게 상처의 회복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용기, 사랑으로 인해 상처입고 괴로워할지라도 그 상처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 이 용기를 통해 한 걸음 내딛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발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