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위주의 책은 쉽게 읽히고 기억에도 잘 남지만 학술적인 책은 이와 달리 기억에 남으려 하면 마치 밑 빠진 독처럼 내용이 새어나가 버리기 일쑤다.
애초에 한 번 제대로 읽는 것조차 버겁고 책을 펼칠 때마다 내가 멍청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아 자신감이 떨어지고 짜증이 나 눈 앞에서 치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학술적인 책을 기억에 효과적으로 남기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효율적이고 걸리는 시간도 짧다 느끼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이런 류의 책들은 뒷편에 용어들을 색인한 것이 있을텐데, 전체적으로 한번 책 내용을 훑어보고 나서 거기에 적힌 용어들을 얼마나 기억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는게 좋다. 그중 이해 못 하는건 따로 처리해줘야 할 것이다. 쓸데없는 용어는 제외해도 된다.
2. 모르는 용어들이 뭔지 아는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원하는 챕터로 진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한번 훑는 과정에서 챕터 별로 무슨 얘기 하는지 대강 정도는 알았으니, 좀 더 깊이 탐구할 영역을 정하면 될 뿐이다. 목차를 보는 것도 좋지만 한번 훑는 것과는 깊이가 아예 다르다. 한 번이라도 전체를 봤느냐 안봤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어려운 내용을 기억에 남기려면 이 정도 가벼운 노력은 컵 속에 든 물 한방울에 불과하다.
3. 어디를 팔지 정했으면 이제 완벽히 이해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읽는것이 중요하다. 한번에 빠르고 정확히 읽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스킬이 요구된다. 아래 내용은 그 스킬을 연마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4. 학술적인 글을 읽는 수준은 개별적인 용어들을 처리하는 수준과 그 용어들의 배열(즉 맥락)을 이해하는 수준,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비판적 사고를 하는 세가지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수학으로 치면 첫 단계는 정의나 정리를 교과서에서 보면서 그대로 가져와 계산하는 방법을 아는 정도고, 두 번째 단계는 정의와 정리들을 이해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수준, 세 번째 단계는 그것을 자신의 생활 속에 적용하는 등 자유자재로 사고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5. 왜 예를 수학으로 들었냐면, 학술적인 책들을 학습하는 방법이 수학공부와 다를 것이 없어서 그렇다. 1회독으로 대강 훑으면서(인풋) 슥 지나간 용어들을 다시 점검(아웃풋)하는 과정 속에서 첫 번째 수준의 훈련이 되고, 제대로 탐독하는 과정 속에서 두 번째 수준의 훈련이 되는 것이다.
6. 본인은 박문호 박사의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을 때 어렵고 답답했던 적이 있었는데 챕터 별로 용어정리를 하고 테스트 했던 것이 도움 됐다. 어려운 텍스트의 범람에 압도된 상태를 벗어나는 데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단 단어를 이해하고 나니까 그제서야 맥락이 이해됐다. 예컨대 다음 텍스트를 보자. 좀 어지러울 수 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들여다 보자.
7. "포도당 생산경로의 조절 매커니즘은 다른자리입체성 조절(알로스테릭 조절)과 기질농도에 의한 조절, 효소단백질의 인산화(공유결합)에 의한 조절로 설명할 수 있다. 다른자리입체성 조절은 다음과 같은 매커니즘을 가진다. 피루브산 카르복실화효소가 Acetyl-CoA에 의한 다른자리입체성 조절로 활성화되면 지방산의 산화가 왕성하게 되어 Acetyl-CoA가 많아지면서 피루브산 카르복실화효소가 활성화되어 포도당신생경로가 촉진된다. Acetyl-CoA는 피루브산 탈수소효소를 억제하므로 지방산의 산화가 왕성하여 Acetyl-CoA의 농도가 높을때 피루브산의 TCA 회로를 통한 ATP생성을 억제함으로써 포도당신생합성경로의 기질이 되게 한다. 에너지 부족 상태를 의미하는 고농도의 AMP 는 fructose-1,6-bisphosphatase(F-1,6-BPase)를 저해함으로써 에너지 비용이 많이 드는(에너지 수지가 나쁜) 포도당신생합성경로를 억제함과 동시에 PFK-1을 활성화하여 해당과정을 촉진시켜서 영양소가 산화되도록 한다. 해당과정과 포도당신생합성 각각의 속도 조절단계를 촉매하는 PFK-1과 F-1,6-BPase가 매우 조화롭게 상반적으로 조절됨을 알 수 있다."
8. 위 내용을 보기좋게 세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배경지식이 있는 상태에서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약된 내용을 읽으며 위의 내용을 압축해 머릿속에서 납득하는 것은 배경지식이 없어도 할 수 있다. 이해의 질적 수준은 다를지라도...
1) 포도당의 합성을 조절하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인 다른자리입체성조절엔 두 가지 대표 기작이 있다. (*조절이라고 함은 인체 항상성과 연관있을 것이다)
2)지방산 베타산화로 인해 많이 합성된 Acetyl-CoA 조건에서는(에너지 풍부 상태)
1 - 피루브산 카르복실화효소를 활성화 -> 지방산 산화↑ -> ATP합성↓-> Acetyl-CoA ↑->피루브산 카르복실화효소 활성화(=양성피드백)-> 신생합성↑
2 - 피루브산 탈수소효소 억제 -> 지방산 산화↑이어서 고농도의 Acetyl-CoA 조건이면 -> 피루브산을 TCA 회로로 넘기지 않고 보존 -> 신생합성↑
3)에너지 부족 상태인 고농도의 AMP 조건에서는
1 - F-1,6-BPase↓->신생합성↓
2 - PFK-1을↑-> 해당과정↑ -> 영양소 산화
(*예상대로 인체 항상성과 관련있는 의미의 '조절'이다. 지방산 베타산화는 지방을 대사하는 경로로, 배경지식에 해당한다.)
이것은 이해하기 쉬우라고 길게 늘여 적은 것이고 배경지식이 더 있다는 가정하에 짧게 정리하면 정말 짧게 끝낼 수 있다.
1) 포도당 합성 조절법 3中1 다른자리입체성조절엔 두 가지가 있다.
2)Acetyl-CoA 조건
1 - TCA 보조경로 양성피드백 하며 Acetyl-CoA 소모되며 지방연소
2 - 반응후기질이 많으니 피루브산을 TCA 회로로 넘기지 않고 보존 -> 신생합성↑
3)AMP 조건
1 - FBPase↓->신생합성↓
2 - PFK-1↑-> 해당↑
아무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저 글을 읽으면 전혀 이해가 안될 것이다. 이유는 보통 단어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잘 읽힌다면 배경지식이 된다는거다. 문해력이 높은게 아니다. 문해력은 이미 알고 있는 단어로 문장이 구성될때 맥락을 잘 파악하는 능력이다. 배경지식을 아는 상태에서 위처럼 머릿속에서 세줄요약을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어느정도 훈련이 되면 읽어나가는 속도가 머릿속에서 내용을 정리하는 속도와 거의 비슷해지게 되고, 엄청난 쾌감이 올 것이다.
9. 결국 학술적인 책을 읽을때 중요한건 첫째가 단어의 개념을 아는 것이고 맥락의 이해는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내용 이해가 중요하다지만 엄밀히는 용어에 대한 부분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내용이 이해된다. 처음부터 내용을 깨우치려고 하니 막막하고 답답한 것이다.
10. 단어 이야기에서 다시 문해력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윗 글을 읽고 단어의 뜻은 몰라도 머릿속으로 집합관계나 플로우차트를 그릴 수 있다면 하다못해 요약을 납득할 수 있다면 그래도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단어의 개념을 알고 있다면 개념이 연결되면서 그 지식은 더 이상 휘발성이 없어지고 뇌에 각인될 것이다. 이게 바로 두번째 단계의 훈련이다. 머릿속에서 정리가 힘들다면 노트 정리도 좋고 그림도 좋다.
11. 마지막 3단계는 뭐냐? 바로 글 쓰기다. 지식에 본인의 의견을 첨가해보도록 하자. 그리고 글로 쌓아올리는 것이다. 물론 자연과학 분야 같은 특정 주제는 2단계 도달도 아주 어려워서 3단계는 버리는게 나을 수 있다. 사실 3단계 과정은 학술적인 책보다 문학 등에 적용하는게 더 나을수도 있다.
12. 예컨대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글을 쓴다고 하면 단순히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 보다는 사견이나 의문점 등을 첨가해 새로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다.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해 보자.
(사실 처음 도전한다면 모호하고 흐릿한 생각을 구체화하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자본주의도 검열이라는 맥락에서 사회주의와 다를게 없다. 극단적인 자본주의도 사람들의 행복이나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 상품으로 검열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희망은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상품들을 구매하게 하여 마치 소유가 그 사람의 가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어 사회를 병들게 한다. 가령 좋은 집과 차, 그리고 재산이 그 사람의 가치 전부라고 생각하는 문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할때 세로토닌이 나오고 흥분하는지는 그러는 과정에서 검열된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소유욕으로 환원되는 이 사회에선 세간에서 내세우는 성공이란 개인에게 있어 달성 이후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마치 말초적인 쾌락을 지속해주는 스마트폰을 하루종일 쥐고 있는 것처럼. 1984에 표현된 극단적 사회주의는 과연 극단적 자본주의의 지옥보다 더 열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12. 이런 생각들, 질문들에 대한 본인의 소신들을 글로 정리하면 틀림없이 본인의 무기가 될 것이다. 나름의 가치관과 신념이 남들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조직되고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 그리고 생각하는 힘과 깊이가 달라진다.
+글을 쓰자는 마인드보다는 떠오르는 생각과 심상을 표현해보자는 마인드가 훨씬 풍부한 내용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위의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는 정공법을 체계화 시킨 것에 불과하다. 쓰고 보니 효율적인 방법이란건 딱히 없는것 같다.
학술적인 글은 공부하는거지 독서하는게 아니에요 님 수학을 예시로 든건 진짜 어이없네
딱 독갤 수준인데 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너 말처럼 공부만의 영역도 있고 독서만의 영역도 있을테지만 여기서는 그 교집합을 이야기하고 싶었음. 읽는다는 행위가 싫을 수 있는 분야의 독서력을 어떻게 연마하는지, 효과가 뭔지. 알리고 싶었을뿐임. 수학으로 비유한 이유는 누구나 학창시절 공부해본 과목이기도 하고 배경지식을 점차 쌓아나간다는 의미에서 학문적 독서라는 행위와 닿아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여기에 대해 어이가 없었다면 어째서 어이가 없었는지 궁금함. 그리고 확실히 4.의 첫문장은 이상하다고 느껴서 수정함.
pq4r 아시는구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2089&cid=59039&categoryId=59044
뭔 생화학 교수할 것도 아니고 그냥 구글에 glycolysis, tca cycle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정리하느라 수고했다
글 나이따
ㄴㄷㅉ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c App
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