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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셋을 하나로 뭉칠 수도 있을 거라고도 봄
그건 "개념"임

계보학의 기본 전제가 이거잖아.
"우리들의 정의와 윤리학은
어떤 형이상학이나, 선의지같은 선의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니체의 힘에의 의지 개념처럼
어떤 권력에 대한 저항과, 그 저항에 맞서기 위한 대립에서
점차적으로 쌓아나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혼돈 속에
어떻게든지간에 만들어진 것이다"잖아.
맞나?

이런 대립과 충돌, 혼란들을 다루는 것이라면
푸코의 고고학 개념도 똑같이 작용됨.
애초에 계보학 루트를 명백히 띄우려는 "정신의학의 권력" 같은 거도 있다지만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을 본다면
여기선 정확히 이론들의 대립과 충돌, 혼란 속에서
우주에서 가스가 뭉쳐 별이 되는것마냥
쌓아 올라가지는 몇몇들이 있고
우리는 그저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개념"이라고 할 뿐임.
그리고 좀 진정되었다 싶으면 에피스테메라 하는 거고.

윤리학을 설명하는 이유도 똑같이 눈에 박힘.
콜레주에서 그 전에 다룬 게 "지식에의 의지"와 "통치성".
통치성이라는 용어야말로 이 "개념들이 모여서 생기는 혼돈과 그로부터의 질서"를 가장 잘 포착한 단어임.
권력-지식 관계가 가장 잘 결합되어 있어서, 통치라는 권력과, 통치 이성이라는 지식이 함께 이 혼란스러운 개념들의 흐름과 힘들의 흐름을 감싸 안으려고 한다는 거지.

여기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윤리학"적 태도였던 거임.
권력 관계에선 "주체의 해석학"마냥 재미없는 논변이다만
지식 관계에선 이게 아주 날카로움. 칸트를 뛰어넘는 자발적 불복종으로서의 비판(비판이란 무엇인가), 지식을 하나의 패권과 헤게모니로부터 떼어내기(촘스키와 푸코 - 진리와 권력), 아는데 냉소하지만 말고 그 지식을 용기있게 말하는 행위 (파레시아), 현재의 상황을 최대한 따라가서 자기 지식을 재정리하는 것 - 보들레르적 "댄디즘"(계몽이란 무엇인가).
개념들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개념을 다룰 수도 있어야 기존의 저항과 같은 일을 할 거라고 푸코는 말하고 있는 것임.
이것들은 소양을 갖춰야 하고, 이것은 교육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다시 "주체의 해석학" 같은 주체 교육 과정인 것임.

나는 이런 식으로 정리했고, 꽤 깔끔해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