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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 책 읽은지 몇년 됐는데 독갤러 두 명이 연달아 쓴 후기 보고 다시 읽어 봤었음.


1. 주인공은 섹스를 경험하게 됐던 전 여자친구들에 대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여자로 순서를 붙여 경험담을 풀어낸다. 그 중 세번째 여자친구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받았는데, 주인공의 성기에다 '레종데르트(존재이유)'라는 이름을 붙여준 그녀. 그녀를 만나고부터 주인공의 인생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강의를 358번 출석했고, 섹스를 54번 했고, 담배를 6921개비 피운 것'으로 모든 것을 수치화 하게 된 습관이 생긴 것이다. 이 습관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주인공은 이후로 자기 존재 이유를 상실해버렸으며 외톨이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성기에 이름이 붙여지고 모든 것을 수치화 하게 된 습관이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길래 자신의 존재까지 상실하게 만들어버린걸까?


2. 사실상 수치화라는 것은 전체주의와 개인주의를 구분 짓는데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온 비유 중의 하나다. 주인공이 말한 '뉴기니 전쟁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일본인 시체더미들'은 그저 몇백명의 전사자로 신문에 실리게 되어 그저 '안타까운 희생자들'에 지나지 않지만, 그 시체더미 중에 한명이 '지뢰를 밟고 돌아가신 주인공의 작은 아버지'로 초점을 맞출 경우, 그 시체더미는 단순한 시체더미가 아닌 게 된다. 신문에 표기된 사망자 숫자는 절대로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픔을 조금도 담지 못하는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비처럼 추락하는 사람들을 상상할 때'와 그 중의 한명이 나라고 상상할때의 차이처럼 말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사람들이 비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문체를 보면 전체주의적 관점이 얼마나 무심한지 알 수 있다.

옴 진리교의 '사린사건'.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무고한 시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그 사건. 신문에 실린 '00명의 희생자', '광신도들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이라는 한줄의 문장을 넘어서 그 뒤에 숨은 개인들의 아픔을 감싸안기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를 썼다. 처참했던 2차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아물지 않은 상처들을 치유해주고 싶어한다는 진심이 '언더그라운드'를 읽는 내내 느껴졌었는데,. 아마 하루키는 처녀작을 쓸 때부터 개인의 상실에 보탬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는지도 모른다.


3. '하트필트'의 소설 <화성의 우물>에 나오는 한 청년 이야기가 소개된다. 한 청년이 화성에 끝 없이 파인 우물로 들어가서 반대편 끝으로 나와보니 결국 15억년이 지나있더라는. 여기에 주인공은 이런 말을 덧붙인다. '우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삶도 없고 죽음도 없어. 바람이지.' 왜 꼭 드넓은 우주를 배경으로 해야 했을까? 왜 15억년이어야 했지? 뒤에 덧붙인 주인공의 말에 단서가 있다고 본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 속에서 바라 본 우리 존재의 하찮음. 15억년이라는 억겁의 시간에 비해 바람처럼 스쳐가는 우리 생의 하찮음, 우리는 티끌만한 존재일 뿐이라는 깨달음 뒤에 밀려오는 존재의 상실, 시간의 상실, 삶의 의미에 대한 상실.


4. 전화를 걸고 화장실에 다녀오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여자는 왜 그렇게 반복해서 오가야 했을까? 소의 끊임 없는 되새김질이 무슨 이미가 있겠냐는 주인공의 말과 달리 본인은 끊임 없이 구두를 매일 끊임없이 닦는다. 인생은 결국 반복되는 소의 되새김질처럼, 끝임없이 닦아야 하는 구두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의미없음(상실)을 전해주려 한다. 또 부재 중인 형의 구두를 닦음으로써 형의 상실을 되새김하며 상실을 메우고 싶어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메타포로 우물이 등장하는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우물이 나오는 걸 보고, 역시 하루키 세계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5년 전 콘택트 렌즈를 주워주고 레코드를 빌렸던 여자 아이. 결국 그 레코드를 돌려주지 못해서 뒤늦게 주인공은 이리저리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내려 노력한다. 5년 후인 지금, 그녀를 찾아내면 제대로 돌려주기 위해서 돈을 주고 똑같은 레코드를 구매하는데, 우연히 손가락이 하나 없는 여자에게서 구매한다. 그녀는 전에 만난 적 있던 사이였는데, 술집 화장실 바닥에 항상 고여있던 구정물 대신 그녀가 있었고 너무 만취한 나머지 주인공이 집으로 데려가 하룻밤 재워준 사이였다.  5년 전 그녀는 콘택트를 주고 레코드를 빌렸지만 뒤는 돈을 주고 레코드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구도가 같다. 이를 나는 하루키가 자주 사용하는 자기복제의 원형이라고 보는데, 과거에 해소되지 못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이 자기복제로 주인공의 평행세계에 재등장 했다고 나는 나름 해석했다. 과거에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메타포로 보여졌다.


6. 양이 등장하고 고양이에 대한 상징들이 등장한 것도 신기했다. 사실 양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만나러 떠난 소설이 '양을 쫓는 모험'이고 고양이를 찾으러 떠났다가 일상에서 미묘하게 벗어나게 된 소설이 '태엽감는 새'라서. 여기저기에서 하루키가 사용하는 기법들의 원형들이 보여서 반가웠다.  사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재미보다는 편안함이 컸다. 앞에 두 갤러가 평가했듯이.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 지기 때문이다. 섹스씬에서는 조금씩 흔들리지만. 현실에 지칠 때 여행을 떠나면 후련한 기분이 되듯이 하루키를 읽으면 그런 비슷한 기분이 든다. 나름대로의 해석은 독서쾌감에 부가적으로 딸려오는 것일 뿐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