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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포닌의 서사는 팡틴과 더불어 레미제라블 인물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불쌍하고 비극적이다... 자기 힘으로 무엇을 제대로 얻은 게 하나도 없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이 전부였던 불쌍한 인간... 애니메이션에서 코제트와 응어리를 털어놓는 장면은 레미제라블 매체를 통틀어 가장 납득되고 감동적인 오리지널 명장면이었음. 접점조차 없는 코제트와 에포닌의 대화와 관계 서사도 맘속에 짓눌린 불만을 속시원하게 해소해줘서 카타르시스도 엄청났다.
주인공 장 발장도 결국엔 자기 능력으로 자수성가해서 시장으로 당선되고 떼돈도 벌어들이고 코제트에게 상속할 수많은 유산을 만들었건만 에포닌은 자길 도구 취급하는 부모에게 반항하면서도, 호구같이 휩쓸리면서 자기주장을 펼치지도 못함.
차라리 에포닌이 테나르디에 부부를 버리고 코제트와 팡틴과 함께 셋이서 살았더라면 코제트와 자매도 되고 행복했을 텐데... 올바른 길로 클 수 있었던 여인이 부모를 잘못 만나 인생이 불행해지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구나. 에포닌의 비장미도 절절해진다.
어릴 때는 핵노답 쓰레기 부모에게 오냐오냐 키워져 세상 물정도 모른 채 코제트의 옷들을 다 뺏어입고 누릴 건 다 누리는 워털루의 건방지고 순진한 공주님이었다면
여관이 망하고 성인이 된 후엔 말 그대로 잃을 게 없는 지옥의 미아이자 거지였음. 가난해서 학교도 못 다니고 성인이 돼서야 자신이 부모에게 이용당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지만 자기 힘으로 뭘 제대로 해내거나 얻을 능력도 없어 어쩔수없이 순종하거나 치기어린 방황만 할 뿐이었음.
에포닌은 무의미한 방황 끝에 마리우스를 만나 유일한 희망의 빛처럼 동경하지만 그런 마리우스마저도 한때 자신이 괴롭혔지만 지금은 신분이 역전된 코제트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자긴 그저 제3자에 지나지 않았음.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은 마리우스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행복했지만, 그 행복마저 사라질 것 같자 아예 전장으로 유도해 같이 죽으려하다가 끝내 자기 손으로 정부군이 발포한 총탄으로부터마리우스를 지켜내고 사랑을 고백한다...
성인이 된 에포닌이 하도 불쌍해서 마리우스와 에포닌이 이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압도적이지만 아무 기반이나 능력도 없는 거지이자 수차례 사기, 절도를 저지른 악질 범죄자 테나르디에의 딸이라는 낙인이 있는 에포닌이 귀족 명문가 태생에 교양 있는 변호사인 마리우스와 이어진다 해도 과연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차라리 일련의 고난을 겪고 회개한 에포닌이 마리우스를 포기하고 용기내어 코제트에게 찾아가서 어릴때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에 이끌려 코제트를 괴롭힌 걸 사과하고, 코제트는 그런 에포닌을 동정하고 용서하며 화해한 두 사람이 자매 같은 친구가 되는 것이 더 낫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선 실제로 그렇게 될 뻔했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해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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