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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논문은 정조~순조대 근기남인의 정치적 활동을 연구한 2019년 경북대 석사학위논문이다.
해당 논문은 정조대와 신유박해 이후 순조대 근기남인의 정치적 활동을 연구한 것이다. 해당 논문은 당시 근기남인을 채제공계와 목만중계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목만중계의 중심인물이던 목만중은 기사남인이자 탁남이었던 본인의 조상인 목내선을 청남에 연결시키고자 했다.
채제공계 남인 사이에서 서학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 성호학파의 안정복 등은 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고, 을사추조적발사건 이후 목만중계 남인들은 척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791년 진산사건으로 천주교에 대한 지배층의 위기감이 커지자 홍낙안, 이기경, 목만중, 강준흠 등의 목만중계 남인은 척사를 기치로 채제공계 남인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정치 명분 확립을 위해 정구와 장현광의 문묘종사를 통해 자신들이 서학과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신유박해 당시에는, 정순왕후, 노론 벽파와 함께 채제공계 남인을 축출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러나 순조대 노론 벽파 몰락 이후에도, 채제공에 대해서는 신원을 주장하면서도, 사학죄인으로 규정된 채제공계 남인과의 관계는 부정하고, 채제공계 남인과의 분리 시도를 통해 순조대 근기남인의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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