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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슬기, 「순조 즉위 초 서교 금압책의 형정적 전환과 사옥(邪獄)」, 『교회사학』, 15, 2018, 정리


해당 논문은 신유박해를 정치적,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신유박해를 거치며 천주교에 대한 형정적 절차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정조 승하 이후, 노론 벽파와 정순왕후는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정조대부터 유학자들이 천주교에 대해 비판하던 무부무군(無父無君)적 경향이 조선 사회를 위기로 몰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 중 일부는 조선 사회의 가치관에 반하는 서교에 동화된 상태였고, 따라서 정부는 사학에 대해 형정 중심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특히 천주교가 모반세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천주교도인 유관검이 대박청래(大舶請來)를 요청한 이유가 조선왕조의 전복에 있다는 것이 사돈인 이우집에 의해 밝혀지자 (188~189쪽) 사옥은 이전까지의 모반(謀叛) 혐의에서 모반(謀反)의 혐의로 보다 역옥화 되었다. (188쪽)



 또한 황사영 백서 사건은 조선 정부로부터 천주교도의 모반 위험성에 대한 확신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이에 사옥의 형정 절차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1801년 12월 22일 정순왕후가 「토사반교문(討邪頒敎文)」을 반포함으로써 사학에 대한 항상적 징치(懲治)가 법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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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사반교문 반포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저자는 ‘서교의 종교적 특성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명확한 서교 처벌기준을 독자적으로 마련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194쪽) 그리고 배교를 약속한 자들은 사형을 감해 유배나 도배형에 처했으며, 『사학징의』에 따르면 유배나 도배형에 처해진 이들 중 80%가 배교했음을 알 수 있다. (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