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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2천만 부 팔린 소설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 1~10권>을 읽고


미야모토 무사시에 관한 평가는 내려져 오는 설들이 진짜냐 아니냐로 나뉜다. 1932년 일본의 소설가 기쿠치 칸과 나오키 산주고는 이 흥미로운 주제에 관해 논쟁하였는데, 기쿠치 칸이 무사시가 검의 고수였다고 하자, 그 의견에 반대편이었던 산주고는 요시카와 에이지에게 어느 쪽을 지지하냐고 물었고 요시카와는 기쿠치를 지지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산주고는

요시카와에게 무사시가 검의 고수인 이유를 대라고 했고 요시카와는 침묵했다. 그리고 3년 후 1935년 <아사히 신문>을 통해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를 발표했다.



소설 속 당시 미야모토 무사시도 지금과 같이 평가가 엇갈렸다. 마지막 권까지도 그에게 갖가지 감정을 지닌 사람들의 악담으로 인한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린다. 사사키 고지로와의 마지막 결투에서도 만일 고지로가 패할 시 무사시를 죽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소설 속 대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이고 아예 역사에 언급도 없던 허구의 캐릭터들도 존재한다. 앞서 요시카와 에이지는 무사시가 검의 고수였다는 설을 지지한다고 했다. 요시카와 에이지가 눈에 보여지고 만져지는 그럴듯한 실제적인 증거가 아닌 소설로 답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승자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사실도 누가 쓰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보여지는 그대로 찍지만 자신의 관점에 따라 편집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진다. 결론적으로 무사시를 신성시하는 설이든 폄훼하는 설이든 설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소설 속에서도 무사시를 폄훼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무사시의 엄청난 수련과 행적을 바탕으로 그를 과대평가하는 이들도 나온다. 소설 속 무사시를 따라가보면 폄훼받는 이유도 과대평가받는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마땅해보이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건 무사시를 오롯이 나타낼 수 없다.



무사시에 관한 상반된 설은 사회의 다양한 면에서 나타나는 갈등들과 비슷해 보인다. 객관적 사실에 집착 할수록 감정적이게 되어 한쪽으로 치우쳐 사실과 멀어진다. 역자 후기에서 엄청나게 흥행한 이 소설 속 무사시에 흠뻑 빠져 그를 신성시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작가가 괴로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 속에는 무사시 말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캐릭터들마다 저마다 처한 상황에서 성장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위대한 무사시'가 아니라 성장하려는 인간들이 모두 얽히고 섥혀 마침내 성장한 이야기라는 것에 있다.



무사시가 쓴 독행도의 21가지 마음가짐이 이 소설 무사시에 행동과 생각에 녹아있다. 그런 마음가짐을 처음부터 가졌다면 그를 완전히 신성시하는 이야기였겠지만 독행도의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 소설 속 무사시는 엄청난 고통과 번민과 수련을 겪는다. 그 과정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그린 요시카와 에이지의 필력은 대단하다. 



'무위의 껍질'이라는 편을 보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느낀 무사시는 집착을 버리다가 허무주의에 빠져버린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 빠져버린 무사시는 이 단계를 넘어서고 싶어서 고승에게 거지꼴로 따라다니며 깨우침을 구걸한다. 

이 고승은 계속해서 아무말도 해주지 않다가 너무 괴로워서 주저앉아 징징대는 무사시의 자리에 막대기로 무사시를 가두는 원을 그리고 떠난다.



무사시는 원을 보고 깨닫는다. 그 것을 어떤 식으로 깨달았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불교의 윤회설과 같은 순환을 뜻하는 것 같았다. 무사시가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 본능적으로 생존 욕구에 의해 창시한 이도류의 각 검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한 몸에서 나온다. 이 관점은 확대된다. 모든 것은 대우주 안에서 순환한다. 소설 속 모든 캐릭터들은 지위와 관계의 오르락 내리락, 만남과 헤어짐, 성장과 나락을 반복한다. 단순하게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은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지만 모든 것이 순환한다는 인식 안에서는 모든 것, 모든 순간에 의미를 느끼면서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무사시의 이도류처럼 나뉘어진 무사시에 대한 두 가지 관점 또한 아주 상반되어보이지만 결국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그러니 나는 어떤 설이든 한쪽을 지지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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