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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보다보니까 다들 별로라고만 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게 많은 것 같고
냅다 별로라고만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뜯어볼만한 의견교환 되는 곳을 못 찾겠어서 그냥 내가 리뷰를 써보려고함
물론 전공자 아니기 때문에 일반 독자 시선에서 쓸 거임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안읽힌다고... 할거임 욕하지 마셈
일반독자치고는 수준이 현저할 정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음
나에게 어려우면 평균수준 독자들도 어렵다고 생각할 거라고 예상함
낮에 썼던대로 세가지 부분을 위주로 볼 거임
- 페미(PC주의)에 먹혔나?
- 심사평대로 읽히는가? (일반독자 입장에서)
- 획일화된 등단용 소설로 읽히는가? (일반독자 입장에서)
리뷰 순서는 권위 있는 곳부터 하려다가.... 어디가 권위 있는지 몰라서
응모작품이 많은 곳부터 하겠음 하루에 두세편 올리는 게 계획임
세계일보 - 수박 - 723편응모
- 페미, PC 같은 주제의식은 따로 안 보였는데, 주인공이 레즈비언임. 뭐 이정도를 PC주의의 영향이랄 게 있나 요즘
- 심사평: "소설에서 ‘아무것도 아닌’ 여름 한 철의 과일인 수박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독창적인 사유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내는 작가의 역량에 신뢰"
"여름이라는 계절과 흐르는 시간과 지루한 삶이 사물들 사이의 숨겨진 유사성을 통해 하나의 형태를 갖추는 작품"
"기존소설의 고정관념이나 문법을 배반하는 신인의 패기 있는 철학적 탐구"
뭔말인지 모르겠다. 해석하려고 하면 아리송하고 모르겠다. 심사평도 철학적 탐구라고 하고있지 않나...
- 잘 모르는 입장이니 획일화된 것인지 어쩐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의 해석은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하단에 모아두겠음
총평: 해석의 여지가 많고, 숨겨진 게 많은 치밀한 소설. 개인적으론 일반독자보다는 평론가들이 좋아할 소설이라고 생각함. 자세히 보아야 예쁜? 두고두고 보면 더 예쁜?
조선일보 - 쥐 - 689편 응모
- 페미나 PC주의가 주요 논점은 절대 아님. 그렇지만 군인 남편을 두고 관사에서 살아가는 아내들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보니 일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이사를 다닌다는 서술이라든가... 그런 부분에서 페미와 비슷한 뉘앙스가 나오긴 했음. 하지만 그건 소설속 상황에 의한 것으로 보이므로 페미의 영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음.
- 심사평 "폐쇄적이며 계급으로 나뉜 공간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의 불안과 방향감 상실, 쥐가 상징한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추적은 돋보였다."
"끝내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서 ... ... 등의 인과는 찾기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이어나갈 줄 아는 점"
"독자도 관사 여자들처럼 기묘한 안도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한마음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는 이 뜨거운 지점이 ‘쥐’의 미덕이 아닐까"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도 맞고, 긴장을 이어가는 것도 맞는데, 그냥 그게 끝이다. 해소되지도, 반전되지도, 끝끝내 이해되지도 않는, 뒷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긴장은 독자인 내 입장에선 어이없음으로 결말지어진 것이다. 심사평도 의문들이 남고, 인과는 찾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심사평에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라는 부분이다.
- 획일화된 소설 맞는 것 같다. 떡밥만 많이 던지고 수습은 전혀 할 필요가 없지. 그냥 소설적 장치로 치부해버리면 그만.
총평: 결말은 어디로 갔나... 글을 아무리 잘쓰면 뭘하나 결말이 없는데... (이 작가는 신춘문예 2관왕이므로 다른 작품을 기대하자)
( 이 아래로 스포 주의 )
세계일보 - 수박
"그러니까 나는 다시, 계속,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다가오고 멀어져가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수박에 대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수박은 아무것도 아니고, 동시에 다가오고 멀어져 가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자만 삶 그자체이기도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연인인 초원은 평생 한가지 음식밖에 못먹는다면 수박, 수박주스를 먹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수박을 싫어한다. 이 연인은 곧 따로 만나지도 않고 헤어진다.
초원이 수박을 먹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나'는 시인이 되겠다는 초원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초원의 시작노트를 보고도 이어코 고급독자가 되는 건 어떠냐고 말해버리고 말았었다.
평생 수박을 먹겠다고하는 초원에게 그건 음식이 아니지 않냐고 되물어 기어코 수박주스라는 대답을 얻어내는 것을 보아도, 이 장면에서 수박은 초원이 원하는 인생을 은유하는 것 같다. 시인으로써의 삶. 화자는 그걸 인정해주지 않고. 뒤늦게 수박주스를 마시며 누가 씹다 뱉어놓은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다.
초원과 이별하고 '나'는 세시간만에 연극각본을 휘갈려 쓴다. 연극에는 수박이 등장한다. 무의식적인 연결. 의도된 것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수박을 가르며 속내를 이야기한다. 연출가와 배우들은 이 장면을 멋대로 해석한다. 의도된 것이 아니다. 연출가와 배우들은 이 장면을 과장한다. 의도된 것이 아니다. 무대에서 수박은 제때 깨어지지 않고 이리저리 과육을 뿜어내어 무대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세시간만에 써낸 작품은 성공적이었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연극은 관심끊고 사는데, 미리언니가 자신의 연극에 초대한다. 그리고 저녁식사에도 초대한다. 디저트로 수박이 나오는데, 왜인지 '나'는 설탕물 오이같아서 싫어한다던 수박을 잘 먹고 있다.회사생활좀 해보니까 초원이 원하던 시인의 삶을 음미해 보고 싶어진 걸까? 정작 예술을 하면서 사는 미리언니는 수박을 또 싫어한단다.
미리언니는 수박을 보면 '나'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극이 별로였냐며, '나'에게 연극이 괜찮았음을 확인받으려고 한다. '나'는 미리언니에게 말해준다.
"언니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멋진 일이에요."
초원에게는 해주지 못했던 말을 수박을 양손에 들고 먹게 된 '나'는 미리언니에게 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초원이 찾아온다. '나'는 초원의 뒤에 붙어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고있다. 그것에 대해 말해주지만 초원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
수박으로 예술을 하는 삶을 은유하고, 예술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삶에 의도치 않게 영향을 주고 또 받는 그런 과정을 그려낸 것이라고 읽었다.
소설속에 연극이 있고 마지막엔 그림도 나온다. 그림의 의미는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했다. 읽어내기 힘들다. 상징과 은유도 멋지지만 개인적으론 소설의 부수적인 멋이라고 생각한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을때 소나기가 뭘 의미하는지 알면 좋지만 모르고 그냥 봐도 좋은 작품이잖음? 이 소설은 따로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지 않으면 뭔소린지 아예 알 수 없을 것 같다.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뭥미? 라는 기분으로 소설이 끝나버릴 거라고 생각한다. 난 게으른 독자지만 이런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뭐.
특별히 좋았던 부분은 '나'가 초원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을 미리 언니에게는 해줄 수 있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초원과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겠다고 표현하는 점 (성장소설이 취향인가...)
조선일보 - 쥐
소설 초반은 외부와 단절된 관사에서의 생활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남편의 계급에 의해서 아내들의 생활도 바뀌고,,, 직업을 각자 다 포기한 아내들... 아내들 간의 불합리한 위계와 소문들이 두렵고 ... 그런 부분들이 아주 잘 그려져있다. 뭐 그렇다고.
그런 와중에 이유를 알 수 없이 남편이 일찍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무슨일일까 불안한데, 초인종이 울리고, 애기는 매달리고, 나가보니 아무도 없다. 발자국소리도 없고. 불안하다 불안해
쥐를 잡으려고 화단인지 어딘지 땅을 파해치는 사모님이 있다. 높으신 분의 아내인 것 같다. 그분은 이상한 소리를 한다. 쥐가 배수관 타고 올라간다고. 조심하라고. 그리고 군에서 일어난 사고에서 죽은 사람이 있어도 은폐되곤 한다고. 은폐를 거부하면 이 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 사고가 없었다고 잘 수습되었다고 말해야만 살아남는단다.
그런데 그런일이 윤진에게도 일어났다. 또 초인종이 울리고 또 아무도 없을가봐 긴장하며 나갔는데 그자리엔 선이 있었다. 선의 남편은 제대한다. 왜냐하면 전원구출이라고 보고하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윤진의 남편은 전원구출이라고 보고했단다.
그리고 사모가 구멍을 파놓은 화단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런데 쥐는 한마리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윤진의 집에서도 다른이의 집에서도 쥐가 발견되었는데. 분명 소리를 들었는데
쥐가 상징하는 것은 '위계에 짓눌려 불합리를 받아들이는 마음' 이라고 읽힌다.
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창궐하고있다. 화자를 두렵게 만든다.
사모는 쥐를 잡으러 다니는데, 화자에게 군에서는 사망사고도 은폐할 줄 알아야 군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인물이다. 사모는 쥐를 잡지는 못했다. 한마리도
윤진의 남편은 사망자를 은폐 보고했다. 선의 남편은 거부했다. 그리고 사라진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윤진은 아이의 손을 꽉 잡고,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쥐의 행방을 생각했다."
어딧긴 어딨나 우리의 마음속에 있지.
불이 타오르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이런 위계와 압박 속에서 윤진이 어떤 행동과 생각을 해야 할지 독자들 알아서 생각하라는 건가?
그 행동에 따라오는 인과도 독자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남편의 입장과 생각도 독자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몇번이나 초인종을 누르고 발자국 소리도 없이 사라진 무언가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독자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불이 왜 났는지도 독자들이 알아서 생각하고?
작품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구성인데, 설명되지 않는 사건이 나열되어 있다면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이 소설은 초반부터 아주 현실적인 묘사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래놓고 자기 편한 곳에서는 현실적인 설명을 모두 생략해 버린다...
도덕적인 부분을 꼬집고 가르치고 싶으시다면 좀 친절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라고해서 뭐 대단한 대철학자는 아니지 않나?? 더군다나 이제 첫 작품인데
수습이 안되어서 그렇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글솜씨는 좋았다. 그래서 더 배신감도 컸고.
정성글 추. 동아일보 신춘 문예는 어떤가요?
재밌었음 의뭉스러운 점이 없진 않았지만 이 글에 나온 쥐보다는 훨씬
대충쓰자니 작가들한테 미안해지고, 공을 좀 들여서 쓰려니 오래걸리고 미치겠네...
흠 평론을 함 읽어봅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