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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모쪼록 노문학이 읽고 싶어진다. 어릴 때 톨스토이 단편에서 읽었던 겨울 러시아 전경이 아직 잊히기 않기 때문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보드카 마시고 떠드는 러시아 사람이 생각난다. 그 밖에도 다른 게 생각나기도 하지만, 일단 당장은 러시아 문학이 생각났다. 그래서 읽었다. 러시아 문학.


대위의 딸은 재밌다. 일종의 로맨스 사극이라고 불러도 될지도 모른다. 재밌다. 캐릭터들은 우스꽝스럽고 중간에 나오는 드라마는 슬프고, 후일담은 훈훈하고, 재밌다. 그게 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재밌다.


주인공은 젊고 팔팔하며 역동적이고 기복이 심하고 착하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자기소개서에 나올 것 같은 그런 주인공이다. 이 젊은이는 매사에 진지함은 없지만 자기 나름대로는 무척 진지하고, 무척 숙고하고, 무척 선의를 위해 행동한다. 사건은 갑작스럽고 주인공은 이런저런 행운과 맞닥드리며 사건을 하나 둘 파헤쳐 나간다. 서사시 같다. 재밌다.


주인공 외의 인물들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집사는 감초고 인물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생각하고 나름대로 행동한다. 주인공도 못 피한 사건을 그들이 피할 수는 없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사건을 맞이한다. 시점은 주인공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인물들이 다채롭기 때문에 부족하다거나 황량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무도회 같다. 재밌다.


한편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기도 하다. 실제 역사에 푸시킨 나름대로의 해석을 곁들인 듯한 소설로, 가상의 인물이 실제 역사와 마주치며 겪는 일이기 때문에 역사적이기도, 개인사적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에서 역사를 풀어내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겹겹이 걸쳐있다. 스포일러지만 후반부에는 당시 제후도 등장하고, 제법 스케일이 크다. 퓨전 사극 같다. 재밌다.


전체적으로 읽기가 편하고 재밌다. 생각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재밌다. 분량도 그리 길지 않아서 금세 읽히고, 재밌다.


그런데 만약 푸시킨이 오래도록 살아서 이 소설을 다시 썼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조금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이 소설은 젊은 군인의 수기여도 좋았지만 늙은 은퇴 군인의 회고록으로 나왔다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운운. 재밌으니 됐을까. 운운.


다음엔 뻴낀을 읽을까. 생각. 운운.

до свидани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