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월간독갤에 투고했던 글입니다만, 일종의 감상문으로서 독갤에도 한번 올려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등대로> 전체를 다룰 계획이었지만 결국 2부에 대한 부분까지밖에 쓸 수 없게 된, (<<등대로>와 현상학>이라는 제목이었던) 사실상 미완의 글이지만 제목을 <<등대로> 1부와 2부: 현상학적 관점> 로 고쳐서 완성된 부분이라도 투고합니다.)
I.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의 서술 방식에 대하여
이 소설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이 작품은 제 1부인 '창(Window)'에서부터 제 3부인 '등대'까지 해브리디스의 한 별장에 휴가를 온 램지 가족과 그들의 친지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서술 기법을 통해 전개한다. 이 '의식의 흐름' 기법은 1890년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처음 사용한 개념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대의 모더니즘(Modernism)과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문학에서 하나의 서술기법으로서 사용되었는데, 이 기법은 인간을 '심리적 존재자' 로 파악하는 것에 근거한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로부터 시작된 '초월론적 현상학(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 에 의해 한층 더 발전되어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율리시스(Ulysses, 1922)>와 같은 의식의 흐름 기법의 작품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 1927)>또한 이러한 현상학적 관점에서 영향 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Bewußtsein)은 존재자의 대상 인식의 조건으로서, 의식에서 사태(Sache)에 대한 지각은 '관점적 현출'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러한 지각들의 통각(統覺, Apperzeption)을 통한 '잇따름'이 곧 사태에 대한 "파악"을 가능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의 '의식의 흐름' 기법의 핵심은 이것에 있다. 인물들의 의식의 서술들, 곧 인물들의 의식의 잇따름이 한 인물(또한 사건)을 '파악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II. <등대로>의 내용에 대하여
<등대로>는 아름다운 여름날 헤브리디스 군도의 작은 별장에 모인 램지 가족과 그들의 친지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 1부에서는 그들의 의식을 그대로 서술됨으로써 그들(의식의 주체)의 성격들과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이 현출되는데, 그들 주위에서 큰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으며, 단지 타인과 자신의 관계와 기억들, 그리고 자신의 작은 생각들만이 보여질 뿐이다. 여름날의 정오에서부터 자정까지의 그들의 하루는 모두 그들의 의식들을 통해서만 현출된다. 램지 가족과 초대받은 친지들과의 저녁 식사, 아이들이 파도를 보러 나갔다 집에 늦게 돌아온 일과 램지 씨의 자신의 저술들에 대한 불안들, 이 모든 것들은 그들 각자의 의식들을 흐름대로 그대로 기술하면서 보여진다. 램지 부인은 이제 쉰 살을 넘긴 여성으로 여덟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언제나 자녀의 소망에 대해 어머니로서 희망을 복돋아 주고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 주며, 20대 때에 대단한 철학적 성과를 거두어 현재 대학 교수로 있는 예순을 넘긴 철학자인 남편 램지를 존경하는 아내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며, 일상 생활이나 일상의 사태들에는 어떤 관심도 없을 뿐더러 무감각한 남편에게 생활비 문제와 같은 중요한 생활 문제를 미처 말하지 못하며, 자신이 남편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또한 램지 부인은 자신과는 달리, 희망적인 말이나 사실이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말이 아니라, 사실이 부정적인 것이라도 무엇보다 진실과 사실, 현실 자체를 바라보는 것을 중요시하는 남편의 그러한 말들을 불쾌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 어느 누구(특히 자기 자식들)의 기쁨이나 편의를 봐주려고 사실을 임의대로 고치지도 않았고 불쾌한 말을 바꾸지도 않았다. 자기 갈빗대에서 생겨난 자식들은 모름지기 삶이란 힘겨운 것이고, 사실이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며, 가장 빛나던 우리의 희망이 꺼지고,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배가 어둠 속에서 버둥거리며 전설적인 땅으로 나아가는 여정에는 (...) 무엇보다도 용기와 진실, 인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알아야 한다. (11쪽)"
램지 씨는 이미 25세 때 한 저술을 통해 중대한 철학적 공헌을 하였지만, 그는 최근에 발표한 저서가 이전의 저서에 비해 못하다는 것, 그가 최고에까지 이르지 못하리라는 그러한 걱정들이 끊임없이 그의 의식을 감싼다. 이러한 그의 고뇌는 그 의식 자체의 기술로서 표현된다.
"그의 지성은 탁월했다. 만일 생각이라는 것이 피아노 건반처럼 나누어져 있거나 알파벳처럼 스물여섯 개 철자로 정렬되어 있다면, 그의 탁월한 지성은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그 철자들을 확고하고 정확하게 하나씩 넘어가는 데, 예컨대 Q까지 가는 데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그는 Q에 도달했다. 영국 전역에서 Q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제라늄 꽃이 피어 있는 돌 항아리 옆에서 한순간 걸음을 멈추고 그는 이제 아주 멀리 떨어진 창가에 앉아 있는 아내와 아들을 보았다. 성스럽고도 천진난만하게 조가비를 줍는 애들처럼 발치에 놓인 사소한 것들에 정신이 팔려 있고 그가 감지한 몰락의 운명으로부터 스스로를 조금도 방어할 줄 모르는 그들을. 그들은 그의 보호가 필요했다. 그는 그들을 보호해주었다. 그러나 Q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Q 다음에도 많은 철자들이 있고, 마지막 철자는 인간의 눈에 거의 보이지 않으며, 아득히 멀리서 희미하게 붉은색으로 빛난다. Z에는 한 세대에 오직 한 인간만이 단 한 번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R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일 텐데. 적어도 여기 Q가 있었다. 그는 Q에서 자기 위치를 고수했다. 그는 Q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Q를 증명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Q, Q라면, R은…………. 이 부분에서 그는 파이프를 꺼내 숫양 뿔로 만든 돌 항아리 손잡이를 두어 번 톡톡 두드리고 계속 생각했다. “그렇다면 R은………….”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를 악물었다. (...) 다른 쪽에는 재능과 영감이 있는 사람들이 철자들을 모두 한 덩어리로 단번에 취급했고 이것이 천재의 방식이었다. 그에게는 천재적인 재능이 없었다. 그는 천재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A부터 Z까지 알파벳의 모든 철자를 정확하게 순서대로 되풀이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아니, 아마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Q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R을 향하여 계속 전진. (57~59쪽)"
램지 가족과 친지들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램지 부인의 머릿속은 자신의 아이들과 초대받은 친지들에 대한 생각들(젊은 릴리 브리스코의 결혼, 폴과 민타가 결혼하기를 원하는 생각, 자신에 대한 반성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1부의 후반부에서 인물들의 시간의식(Zeitbewußtsein)은 어떤 3인칭 묘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상(Phänomenon) 내지 현출(Erscheinung)하는 상(모습, Bild)의 변화'를 통해 서술된다.
"이제는 모든 것이 한 단계 더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문지방에 발을 올려놓은 채 그녀는 자기가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사라져 가는 그 장면에서 잠시 더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몸을 돌려 민타의 팔을 잡고 방을 나서자, 그 장면은 달라졌고, 다른 형태를 띠었다. 어깨 너머로 한 번 더 마지막으로 돌아보면서 그녀는 그것이 이미 과거가 되었음을 알았다. (178쪽)"
"시간이 흐르다(Time Passes)" 라는 제목의 제 2부에서는 전시(戰時)를 거치면서 폐가가 되어 가는 별장의 모습을 매우 짧게 시적으로 그려낸다. 이 장에서 램지 부인의 죽음, 그녀의 아들이자 학자가 될 재능이 있었던 앤드루, 부드러운 심성과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그녀의 딸 프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괄호 안에 몇 줄로 짧게 기술된다. 대신 여기서는 파도의 공포, 부재와 소멸의 어둠이 그려진다.
파도 소리는 작품에서 끊임없이 들려온다. 제 1부에서 램지 부인은 파도 소리를 평화로운 자장가 소리처럼 인식한다. 그러나 여기서 파도 소리는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 인간이 손쓸 수 없는 파괴적인 자연의 힘으로 인식된다.
<등대로>에서 '죽음(Death;Tod)' 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삶(Life;Leben)'이 주제적으로 다루어진다. 우리의 세계의식의 삶(Weltbewußrseinsleben)이 바로 이 작품의 중심이다. 우리의 삶을 그 전체로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의식의 총체이다. 죽음은 의식의 끝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죽음(Tod)' 개념을 Ableben과 Sterben으로 구분한다. Sterben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태도'를 취하는 '현-존재(Da-sein)' 에게만 특유한 어떤 종류의 죽음, 즉 현존재가 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이며 "현존재가 존재하게 되자마자 떠맡게 되는 존재함의 한 방식(GA 2/289, 245)*"인 데 반해, Ableben은 생물학적 죽음을 의미한다. 의식의 종료로서의(그러므로 삶의 종료인) 죽음은 Ableben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행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Sterben으로서 존재한다.
"현존재는 그가 존재하고 있는 한 이미 자신의 아직-아님(Noch-nicht)으로 존재하듯이, 그는 또한 언제나 이미 그의 종말로 존재한다. 죽음으로 의미되고 있는 끝남은 현존재의 끝에-와-있음이 아니라 오히려 현존재라는 이 존재자의 종말을 향한 존재(Sein zum Ende)인 것이다. 죽음은, 현존재가 존재하자마자, 현존재가 떠맡는 그런 존재함의 한 방식(eine Weise zu sein)이다.(GA 2/329)"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아무런 확고한 토대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언제든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sterben'이고, 그 사실에 대한 자각이 '불안(Angst)'이다.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언젠가 우리 수명이 다하게 되는 특정 사건에서 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매 순간 죽음과 만나고 있고, 매 순간 죽는다. 이 작품에서 파도에 대한 공포(Furcht)는 sterben이고, 인물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Ableben이다. 이 작품의 이 장(제 2부)에서는 Sterben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Heidegger Gesamtausgabe, Vittorio Klosterman (이하 GA). bd 2: Sein und Zeit (초판: 1927)
참고자료
등대로(작품 해설) (이미애, 민음사)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입문 (W. 블라트너 저, 한상원 역, 서광사)
후설의 현상학 (단 자하비 저, 박지영 역, 한길사, 2017)
- dc official App
철스퍼거다 철스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