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시를 많이 읽어보진 않았고 그냥 설렁설렁 읽어봄
심지어 포, 예이츠, 바이런, 릴케, 보들레르 등등.. 전혀 안 읽어보고 마구잡이로 읽음
이 글은 그나마 있는 지식을 쥐어짜내서 써봄
한국현대시를 찍먹해본 독붕이들이 매운맛에 데여서 어리둥절한 경우가 많은데
이건 일명 낭만파로 부르는 고전시에서 훌쩍 점프해버려서 그럼
한국현대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음
1. 기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운문 체제에 서정적인 낭만시
2. 일명 미래파라고 불리는 산문 체제로까지 형식이 확장된 미래시
반드시 이렇게 양분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럼
그러니까 낭만시는 우리가 원래 읽던 시고
미래시는 이게 시라고? 하는 시임
예시를 들어봄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창문들은 이미 밤을 넘어선 부분이 있다 잠결이 아니라도
나는 너와 사인이 같았으면 한다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주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 오면 안 돼"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하는 것이어서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같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 - 박준, 『나의 사인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이 두 시는 운문 형태를 갖추고 있고, 일관된 이야기 하나된 화자 서정적인 문장들 등... 기존 우리 통념 속 시와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음
이제 다음 예시
「요롱이는 말한다. 나는 정말 요롱이가 되고 싶어요. 요롱요롱한 어투로 요롱요롱하게. 단 한 번도 내리지 않은 비처럼 비가 내린다. 눈이 내린다고 써도 무방하다. 요롱이는 검은색과 검은색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마침표를 잃어버린 슬픔, 양팔을 껴야만 하는 외로움. 그건 단지 요롱요롱한 세상의 요롱요롱한 틈새를 발견한 요롱요롱한 손가락의 요롱요롱한 피로. ... 나는 정말 요롱이가 되고 싶어요. 요롱요롱한 어투로 요롱요롱하게. 정말 요롱이가 된다면 정말 요롱이가 된 기분이 들 테지. 고딕체의 마음으로, 소수점 이하로 무한질주하는 원주율의 아름다움으로. 단 한번도 내리지 않은 꽃처럼 신열이 내린다. 어둠이 내린다고 써도 무방하다.」 - 이제니, 『요롱이는 말한다』
「불빛 속에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너의 손등이 드러난다 플랫폼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기차들이 달빛에 잠겨 있다 나는 승강장에 서서 객차 난간에 기대어 있는 너를 올려다본다 기차는 자정이 된다 여행객들의 가방이 자정이 된다 철로 저편에서 어두운 윤곽의 철도원이 푸른 깃발을 흔든다 당신에게서 기침 소리가 들려요 당신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려요 얼굴을 파묻은 채 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류 가방을 든 난쟁이 신사가 너의 허리에 팔을 두른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는 흐느낀다 잊으세요 당신의 고함 소리를 잊으세요 레바드끼냐, 레바드끼냐, 이 망할 년, 난쟁이의 음산한 목소리, 난쟁이는 너의 허리를 잡아 끌며 한 손으로는 객실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차가운 형광 불빛이 쏟아진다 너의 손이 난간을 부여잡는다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 꿈으로 뒤섞여가는 형체 없는 너의 얼굴이 드러난다 너의 얼굴이 부서져내린다 너의 얼굴이 하얀 눈발이 되어 흩날린다 이 백치 같은 년, 레바드끼냐! 레바드끼냐! 멀어져가는 너의 흐느낌 허공에 그어지는 어두운 눈보라의 긴 꼬리」 - 서대경, 『은하 철도』
이 두 시는 산문 형식에 화법도 지리멸렬하고 주제의식도 흐릿함, 심지어 화자조차도 모호함
산문 형식 자체는 옛날부터 있었지만, 오늘날 시에는 이 형식이 더 빈번하게 쓰이고 산문시라고 굳이 따로 구별하지 않음
물론 운문 시라고 하더라도 이런 모호한 화법이나 주제의식이 나타나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봄
물론 이런 이분법이 반드시 정확한 건 아님 어디까지나 느낌상으로 구분하는 걸 굳이 이렇게 풀어놨을 뿐이고...
시인의 수가 워낙 방대한 편인데다가 시인마다 시상이나 언어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 입장에선 바로 읽고 싶은 시들을 구별하긴 어려움
그래서 만약 시를 접하고 싶다면 독붕이들 취향에 맞는 시를 차근차근 찾아보는 게 제일 중요한 듯
(보통 독붕이 취향에는 기형도 시인을 많이 추천하는 것 같음)
옛날 작가부터 찾아가면서 맛보고 맛보고... 차근차근 거슬러 내려오는 식도 좋고,
아니면 필자는 읽어보기 전에 미리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함
시 같은 경우엔 여기저기 흩뿌려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읽어보기가 용이함
결론적으로 처음 고전 소설 입문했던 것처럼 많이 찍먹하고 열심히 자기 취향에 맞는 시를 접해보는 게 좋을 듯
3줄 요약
1. 한국시는 낭만파 미래파 크게 두 갈래로 나뉨
2. 미래파 시부터 접하면 호돌짝 놀랄 수도 있음
3. 차근차근 시들을 접하며 자기가 읽고싶은 시를 읽어보는 거 추천
굿독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c App
나는 한국 현대시는 특유의 시골냄새가 나서 거부감들더리
서대경을 알다니 너 좀 아는구나 - dc App
현대시 재밋다 더 추천해주새